뉴욕서 반기문 만난 정의화 “‘선택과 집중’ 하면 좋겠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8일 15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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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사진공동취재단. 정의화=국회대변인실 제공.
반기문=사진공동취재단. 정의화=국회대변인실 제공.
“모든 과제를 다 잘 하려고 하지 말고, (몇 개 핵심과제에) ‘선택과 집중’을 하면 좋겠습니다.”

정의화 국회의장(67)은 6일 오후(현지 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유엔본부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71)과 만나 이런 조언을 했다고 복수의 배석자가 전했다. 정 의장은 워싱턴 방문 일정을 마치고 뉴욕을 잠시 거쳐 귀국하는 길이었다. 반 총장은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의 빈곤 극복, 복지, 교육, 양성평등, 기후변화 등 17개 과제를 정 의장에게 설명하고 한국 국회 차원의 협조를 당부했다. 이에 정 의장은 “내가 의사 출신이다. 병 치료에도 (다소 가벼운) 염증 치료가 있고, (정말 심각한) 골수 치료가 있다. 17개 과제가 지구촌의 질환이라면 정말 중요한 몇 개 과제만 골수 치료를 하고, 나머지는 염증 치료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반 총장은 이에 대해 “좋은 말씀 감사하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선택과 집중은 반 총장이 가장 많이 듣는 충고 중 하나다. 미국과 유럽의 주요 언론들은 그동안 “반 총장이 재임기간 중 업적을 남기고 싶다면 몇 개의 시대적 핵심 어젠다를 선택해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해왔다. 그러나 이에 대해 반 총장의 측근들은 “유엔의 핵심 어젠다를 사무총장 마음대로 정하는 게 아니다. 유엔의 구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에서 나온 ‘비판을 위한 비판’”이란 반응을 보이곤 했다. 유엔이 기업이라면 사무총장은 주주(회원국)들의 결정을 따라는 ‘전문 경영인’이지, 의사 결정을 마음대로 하는 사주(대주주)가 아니라는 논리. 이 때문에 유엔 소식통들은 “정 의장의 충고 한 마디에 반 총장의 업무 스타일이 쉽게 바뀌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 총장은 정 의장보다 네 살 많지만 평소 정 의장에게 “지도편달해달라”는 내용의 서신을 보낼 정도로 남다른 친분을 유지해왔다고 한다. 정 의장이 의장직에 취임한 직후인 지난해 6월에도 반 총장은 축하 서신을 보내 “과거 외교부에 근무할 때부터 따뜻하게 지도, 격려해 주셨던 데 대해 늘 감사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고 했다. 정 의장 측 인사들은 “반 총장이 외교통상부 장관이던 2004년 김선일 씨 피살 사건이 발생해서 외교부가 국민적 비난을 받을 때 정 의장이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야당 의원이면서도 반 총장을 많이 배려해줬다”고 설명했다. 피살된 김 씨는 정 의장의 지역구민이기도 했다. 당시 상임위 회의에서 정 의장은 “반 장관은 안심하고 장관직을 맡길 수 있는 분이라 생각했는데 사퇴 얘기가 나와 깜짝 놀랐다. 함부로 사퇴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당부했고, 이에 반 총장은 “격려의 말씀에 감사하다”고 답했었다. 한국 외교부의 한 관계자는 “반 총장이 당시 김선일 씨 사건 때문에 장관직에서 물러났다면 지금 유엔 사무총장 자리에 있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 반 총장이 정 의장에게 깍듯이 예의를 갖추는 이유가 여기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부형권특파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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