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 “NLL은 피로 지킨곳”… 10·4선언 이행 철회하나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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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후폭풍]국무회의서 盧 前대통령 발언 비판

국가정보원이 2007년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 전문을 공개한 다음 날인 25일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최경환 원내대표(왼쪽 사진 왼쪽)와 황우여 대표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같은 날 국회 본회의장에서 귀엣말을 나누는 민주당 김한길 대표(오른쪽 사진 왼쪽)와 전병헌 원내대표의 표정도 심각하다. 여야는 이날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한 진상 규명을 위해 국정조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국가정보원이 2007년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 전문을 공개한 다음 날인 25일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최경환 원내대표(왼쪽 사진 왼쪽)와 황우여 대표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같은 날 국회 본회의장에서 귀엣말을 나누는 민주당 김한길 대표(오른쪽 사진 왼쪽)와 전병헌 원내대표의 표정도 심각하다. 여야는 이날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한 진상 규명을 위해 국정조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서해 북방한계선(NLL)은 수많은 젊은이들이 피로 지키고 죽음으로 지킨 곳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국무회의에서 NLL 수호 의지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 형식적으로는 6·25전쟁 63주년 되는 날을 기념한 발언이었지만, 전날 국가정보원이 공개한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관련 발언을 정면으로 비판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청와대 관계자는 “박 대통령도 회의록을 국민께 공개해야 한다는 생각이 (국정원과) 같았다”며 “박 대통령은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지금도 밤낮으로 최전선에서 고생하는데 국군통수권자가 (북한 정상에게) NLL에 대해 그런 발언을 한 것을 동의할 수 없다고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 10·4선언 이행 철회할 수도

박 대통령은 대선 기간에 7·4 남북공동성명이나 남북기본합의서, 6·15 남북공동선언과 함께 노 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간에 맺은 10·4선언도 남북 간 신뢰를 위해 지켜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이명박정부의 대북정책과 차별화된 지점이었다.

하지만 10·4선언이 채택되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긴 남북 정상의 회의록이 공개되면서 박 대통령이 10·4선언의 이행을 철회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여권의 핵심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이 NLL을 사실상 포기할 듯한 태도를 취하며 만든 선언은 백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은 회담에서 후임 대통령이 10·4선언을 계승하도록 ‘쐐기를 박자’고 말했지만 이런 상황에서 (현 정부가) 10·4선언을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박 대통령이 전날 “여야가 제기한 국정원 관련 문제들에 대해 국민 앞에 의혹을 밝힐 필요가 있다”며 회의록 공개에 힘을 실어준 것도 10·4선언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청와대 내에서는 회의록 공개에 신중론을 펴는 참모들이 더 많았지만 박 대통령은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질 게 아니라 국민에게 정확한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고 한다. 또 국정원 댓글 사건과 관련해 야당의 국정조사도 수용함으로써 과거 문제를 깨끗이 털고 가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다만 박 대통령이 10·4선언의 이행을 공식 철회하기보다 자연스럽게 후순위로 미뤄둘 가능성도 있다. 박 대통령은 대선 기간에도 “10·4선언의 경우 이행에 재정이 많이 소요되고, 국회 동의도 받아야 하고, 민간이 할 일도 있기 때문에 세부적인 것은 조정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 박 대통령의 ‘세 번째 승부수’

그럼에도 회의록 공개가 가뜩이나 경색된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다. 남북 간 대화의 물꼬를 터야 하는 상황에서 북한이 대화로 나올 명분을 오히려 빼앗은 게 아니냐는 얘기다. 야당에선 “앞으로 북한이 우리와 대화하려 하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회의록 공개가 오히려 박 대통령의 ‘세 번째 승부수’라는 말도 나온다. 박 대통령은 남북 간 중대국면에서 예상과 다른 선택을 했다. 첫 번째 승부수는 4월 개성공단 철수였다. 개성공단이 남북 간 교류와 협력을 이어주는 유일한 끈이었던 상황에서 북한이 원자재 및 식자재 반입을 막자 과감히 철수를 결정했다. 남측 근로자의 안위를 더 중시하면서 북한에 끌려가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대내외에 알린 것이다.

두 번째 승부수는 이달 중순 남북당국회담 협상 과정에서 회담 대표의 격(格) 문제를 제기하며 회담 무산을 감수한 결정이었다. 북한은 지금까지의 관행을 강조했지만 박 대통령은 ‘글로벌 스탠더드’를 내세워 남북관계의 ‘새판 짜기’를 선언했다. 당시 북한이 회담 불참을 통보하자 이례적으로 한국 정부가 회담 무산을 먼저 공개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이때 “남북회담이 성과 없이 결렬되더라도 왜 그렇게 됐는지 투명하게 숨김없이 국민에게 설명하고 국민이 상식선에서 받아들일 수 있으면 된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회의록 공개도 이런 기조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당장 북한의 반발을 사더라도 회의록을 공개함으로써 과거와 같은 ‘저자세 대화’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얘기다. 개성공단 철수, 남북회담 무산에서 보여준 것처럼 과거 방식과의 단절은 박 대통령이 강조하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청와대 관계자는 “회의록 공개가 앞으로 남북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단할 수 없지만 우리가 자신감이 없었다면 공개했겠느냐”고 말했다.

동정민·이재명 기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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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북방한계선#남북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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