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 조각 완료]美벤처 전설, 조국이 소환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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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한강 기적’ 특명 받은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

청바지 입은 金후보자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가 17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자택 앞에서 동아일보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 전 애플 최고경영자(CEO)를 연상시키듯 청바지에 검은색 라운드 티셔츠를 입은 그는 “미래, 과학, 기술 등을 서로 연결하는 일을 하게 될 것”이라며 “융합을 통해 미래산업을 만드는 것이 나의 가장 큰 과제”라고 말했다. 정지영 기자 jjy2011@donga.com
청바지 입은 金후보자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가 17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자택 앞에서 동아일보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 전 애플 최고경영자(CEO)를 연상시키듯 청바지에 검은색 라운드 티셔츠를 입은 그는 “미래, 과학, 기술 등을 서로 연결하는 일을 하게 될 것”이라며 “융합을 통해 미래산업을 만드는 것이 나의 가장 큰 과제”라고 말했다. 정지영 기자 jjy2011@donga.com
“18일 인선의 핵심은 김종훈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측 관계자는 17일 11개 부처 장관 후보자를 발표한 직후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이같이 밝혔다.

미래창조과학부는 ‘박근혜 정부’의 성패를 좌우할 핵심부처로 꼽힌다. 박 당선인은 특정 부처에 지나치게 힘이 쏠린다는 일각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미래부에 연구개발 기능은 물론이고 산학협력과 일자리 창출까지 담당하도록 막강한 힘을 실어줬다. 과학 및 정보통신기술(ICT)과 산업의 통섭을 통해 창조경제를 만들어 ‘제2 한강의 기적’을 만들겠다는 박 당선인의 강한 의지를 반영하고 있다. 박 당선인은 김종훈 후보자가 기초과학과 ICT에 대한 이해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성공한 벤처 창업자이며 알카텔루슨트 벨연구소 사장을 지낸 풍부한 현장경험도 높이 산 것으로 보인다.

김 후보자는 이날 밤 본보 기자와 만나 “과학기술산업은 융합을 통해 가능한 것”이라며 “미래부가 과학기술과 ICT를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 국가경제가 지속 성장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 후보자는 국내에선 생소하지만 극적인 성공 스토리의 주인공이다. 1975년 서울 정릉의 산동네에 살던 그는 중학교 2학년 때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미국엔 백인만 사는 줄 알았다”던 그는 메릴랜드 주의 가난한 흑인들이 모여 살던 한 빈민촌에 정착했다.

아버지와의 불화로 17세 때 집을 나와 세븐일레븐 편의점에서 오후 11시부터 오전 7시까지 일주일에 6, 7일을 일하면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영어는 서툴렀지만 과학과 수학에서 뛰어났다. 그를 눈여겨본 교사의 도움으로 고등학교를 차석 졸업한 그는 전액 장학금을 받고 존스홉킨스대 전자공학·컴퓨터과학과에 입학했다. 또 메릴랜드대에서 통상 4∼6년 걸리는 공학박사 학위를 3년 만에 따내며 성공신화의 기반을 마련했다.

1980년대 말 한 차례 소프트웨어회사를 창업했다가 실패를 경험한 그는 미 해군에 자원해 장교로 7년간 복무했다. 해군 장교 업무 중 가장 고된 것으로 알려진 핵잠수함 탑승을 자원했다. 김 후보자의 지인인 이병기 서울대 전기공학부 교수는 “김 후보자가 미국 사회로부터 받은 혜택에 보답하기 위해 해군 장교에 지원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며 “사명감과 책임감이 상당히 높은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제대 후 1992년 큰딸의 이름을 딴 벤처회사 ‘유리시스템스’를 창업한 그는 초고속인터넷 기술 중 하나인 비동기식 전송 모드(ATM) 통신장비를 개발했다. 1998년 세계적인 통신장비업체인 루슨트테크놀로지에 10억 달러에 회사를 매각하며 38세의 나이에 미국 400대 부자의 반열에 올랐다. 성공한 뒤엔 둘째 딸의 이름을 딴 ‘주리재단’을 만들어 어려운 사람을 돕는 데도 앞장섰다. 지인들과 함께 미국 프로농구 워싱턴 위저즈와 북미아이스하키리그 워싱턴 캐피털스를 인수해 공동 구단주에도 올랐다.

2001년 메릴랜드대 교수로 자리를 옮겨 전자공학을 가르치던 그는 2005년 외부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13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벨연구소의 최연소 사장을 맡으며 또다시 화제의 주인공이 됐다.

벨연구소 출신으로 김 후보자와 인연을 맺은 윤종록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전문위원(전 KT 부사장)은 “실제 사업에 관련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개혁을 추진하면서도 자존심 강한 벨연구소 연구원들에게 존경을 잃지 않는 강한 리더십을 가진 사람”이라고 평했다.

벨연구소를 이끌며 연구원들이 센서와 네트워크를 활용해 사람들의 생활환경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스마트기술 연구에 집중하도록 했고 기업 창업도 적극 권장했다. 정보기술(IT)과 생명공학 등의 융합에도 관심이 많다.

국내 네트워크는 협소

국내 ICT업계에서 김 후보자의 네트워크는 넓지 않은 편이다. 1990년대 후반 ATM 기술을 개발한 뒤 국내의 국가초고속인터넷망 구축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국내 통신업체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측을 만나는 등 열심히 뛰었지만 장비 판매에 실패하는 등 국내 산업계와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벨연구소 소장으로 취임한 뒤에는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리서치센터를 세우고 여러 차례 방한해 서울대, 고려대, ETRI 등과 다양한 협력 프로그램을 만드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김 후보자의 선임에 대해 국내 과학기술계와 IT업계는 대체적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1000여 명의 공무원 조직을 이끌며 이해관계를 조정할 수 있을지에는 부정적인 반응을 내놓았다. 한국어를 잘하는 편이지만 지난해 서울대 학위수여식 축사도 영어로 할 만큼 한국어보다 영어를 더 편하게 느끼고 있어 조직 내 소통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채널A 영상]野 “미국인으로 산 김종훈, 미래부 수장 부적절”
한국 국적 회복 신청… 미국 국적 포기

미국에서 성공신화를 써왔던 그가 많은 것을 포기하며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김 후보자는 8일경 법무부에 한국 국적 회복 신청을 했고 14일 허가가 난 것으로 알려졌다. 김 후보자는 미국 국적 포기에 서명해 한국인이 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기 위해 매년 여름 한국을 방문할 정도로 한국에 애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민주통합당 박홍근 의원은 “사실상 미국인인 김 후보자가 국내 과학기술과 연구개발 업무를 총괄하는 부처의 수장이 되는 것은 부적절하다”라고 반대 의사를 밝혔다.

IT업계에선 김 후보자가 2007년 박 당선인을 만난 뒤 인연을 이어온 것 으로 알려졌다. 박 당선인이 김 후보자에게 장관직을 제안한 것은 이달 초부터다. 박 당선인이 애국심과 대한민국의 미래를 얘기하며 설득하자 김 후보자가 어렵사리 승낙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는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6년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현 한국과학기술연구원)를 설립하면서 미국 독일 등에서 일하던 젊은 과학자들을 불러들인 모습과 오버랩되는 부분이다.

김용석·손영일 기자 nex@donga.com
#박근혜#김종훈#미래창조과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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