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 먹더라도 사면 MB…朴과 ‘허니문’ 깨지나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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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이르면 29일 단행
인수위 “정권말 관행 끊어야”… 靑관계자 “대통령 고유권한”

이명박 대통령이 단행하려는 특별사면과 그 대상을 놓고 그동안 ‘화합 모드’를 보였던 신구 권력이 충돌 양상을 보이고 있다. 비교적 매끄럽게 진행됐던 정권 인수인계 과정에서 첫 파열음이 밖으로 터져 나온 것이다.

이 대통령은 이르면 29일 국무회의에서 그동안 검토해 온 임기 중 일곱 번째이자 마지막 특사를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27일 동아일보 기자에게 “법무부 사면심의위원회가 최근 특사안에 대한 심의를 마친 것으로 안다. 이 대통령이 이르면 29일 국무회의에서 특사안에 서명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특사 대상에는 이 대통령의 ‘정치적 멘토’인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고려대 동기동창인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 등 구속 중인 최측근 인사들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측근인 박희태 전 국회의장도 거론된다. 그러나 김윤옥 여사의 사촌오빠인 김재홍 전 KT&G 복지재단 이사장과 김희중 전 대통령제1부속실장은 특사에서 제외될 개연성이 높다. 청와대는 이번 특사에서 대통령 친인척, 비리 혐의로 재판 중인 재벌 회장 등은 대상에서 제외할 것으로 알려졌다.

윤창중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대변인은 26일 브리핑에서 “부정부패나 비리에 연루된 사람들에 대한 사면은 국민을 분노케 할 것이고 그러한 사면을 단행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라며 이 대통령 측근에 대한 특사를 정면 비판했다. 이 대통령의 마지막 특사 추진에 대해 인수위가 처음으로 공개 비판한 것이다. 윤 대변인은 “임기 말에 이뤄졌던 특사 관행은 그 고리를 끊을 필요가 있다. 대변인으로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 충분히 상의했다”라고 말해 ‘특사 반대’는 박 당선인의 의중임을 강조했다.

청와대는 박 당선인 측의 비판에 대해 공식 논평은 자제하면서도 불편한 심기마저 감추지는 못했다. 청와대의 다른 핵심 관계자는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으로 법과 원칙에 따라 진행되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 욕 먹더라도 사면하겠다는 MB… 朴과 ‘허니문’ 깨지나 ▼

청와대는 전직 대통령들이 대부분 임기 말에 마지막 특사를 단행한 것을 거론하며 박 당선인이 반대하더라도 특사를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실제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 직전인 2007년 12월 최도술 전 대통령총무비서관 등을 특별사면했고, 고 김대중 전 대통령도 2002년 12월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 등을 사면했다.

○ ‘정치적 부채’를 갚으려는 이 대통령


이 대통령은 왜 야당은 물론이고 박 당선인 측의 비판까지 감수하면서 최측근 인사에 대한 특사를 추진하는 것일까. 정치권에선 그 이유로 이 대통령의 ‘정치적 부채의식’을 자주 거론한다. 특히 고령의 최시중 전 위원장(76), 천 회장(70)에 대한 이 대통령의 심적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이 둘의 구치소 생활도 종종 보고받고 인간적인 연민을 자주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명은 ‘MB 대통령’을 만든 핵심 창업 공신이다. 친형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의 친구이기도 한 최 전 위원장은 여의도 정치를 잘 몰랐던 이 대통령에게 정치적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자신이 회장으로 있던 한국갤럽의 여론조사 기법으로 정국 대처 방안을 가르친 ‘정치 스승’이다. 대선 과정에서 비공식 최고의사결정기구였던 ‘6인 회의’의 핵심이기도 했다. 최 전 위원장이 파이시티 사업권 인허가 알선과 관련해 받은 8억 원 때문에 구속되면서 한동안 대선자금 관련성을 공개 거론한 것은 이 대통령과의 이런 정치적 인연을 상기시키려는 의도였다는 분석이 나왔다.

천 회장은 사석에서 이 대통령을 ‘명박이’로 부를 정도로 가까운 친구이다. 각종 정치자금 관련 업무를 도맡았다. 이 대통령이 한나라당에 대선후보 자격으로 내야 할 특별 당비 30억 원을 대납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천 회장은 임천공업 이수우 대표로부터 워크아웃 조기종료 등의 청탁과 함께 46억 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여권의 한 핵심 인사는 “MB가 최 전 위원장과 천 회장에 대한 특사에 집착하는 이유는 이번이 아니면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박근혜 정부에선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는 판단도 깔려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특히 최 전 위원장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한국갤럽이 유독 박 당선인에게 불리한 여론조사 결과를 자주 발표했다는 이유로 일부 친박계 의원의 대표적 표적이었다.

이 대통령의 특사 강행 배경에는 본인의 경험이 반영됐다는 분석도 있다. 이 대통령은 1998년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박탈당한 뒤 미국 연수를 떠났다가 2000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단행한 광복절 특사로 사면·복권됐다. 그 덕분에 2002년 서울시장에 도전해 당선되면서 정치적 재기가 가능했다. 여권 관계자들은 “이 대통령이 ‘내가 그때 사면받지 못했으면 대통령이 될 수 있었겠느냐’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주변에 한 적이 있다”라고 전했다.

○ ‘정치적 부담’을 거부하는 박 당선인

박 당선인 처지에선 새 정부 출범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른바 비리 의혹 관련 여권 인사들이 여론의 주목을 받는 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박 당선인의 사실상 첫 인사라고 할 수도 있는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한 국민여론도 좋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이 26일 브리핑에서 “사면은 국민을 분노케 할 것”이란 강한 표현을 쓴 것도 이런 인식과 무관치 않다.

박 당선인이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수위를 더 높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법으로 보장된 이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를 막을 수 없는 상황에서 신구 권력 간 갈등이 길어지면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권력형 비리 척결에 대한 박 당선인의 의지를 강조하면서 MB 정부와 자연스럽게 차별화하는 기회로 삼을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새누리당의 한 재선 의원은 “박 당선인은 ‘사면=MB의 단독 작품’이라는 인식을 확산시켜야 자신은 정치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래야 ‘신뢰와 원칙’이라는 박 당선인의 정치 브랜드도 훼손되지 않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박 당선인은 대선 기간 “대통령의 사면권을 분명하게 제한해 무분별하게 남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라는 생각을 꾸준히 밝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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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A 영상] 단독/청와대 “이동흡 지명, 박근혜 당선인측 작품”

이승헌·홍수영 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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