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거명하며 공천약속… 47억 줬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28일 03시 00분


코멘트

■ 민주도 공천뒷돈 의혹… 檢, 돈 건넨 3명 진술 확보

새누리당에 이어 4·11총선 민주통합당 공천 과정에도 47억 원의 공천 뒷돈 성격의 돈이 오고간 것으로 27일 확인됐다. 비례대표 공천을 받으려는 3명이 친노 인사에게 돈을 건넸다는 것이다. 특히 뒷돈 제공자들은 검찰에서 “박지원 원내대표를 보고 돈을 건넸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이 새누리당에 이어 민주당의 공천 뒷돈 의혹에 대해서도 전면적인 수사에 착수하면서 대선 정국에도 상당한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 ‘공천 뒷돈’은 모두 47억 원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친노(친노무현) 계열 인터넷 방송국인 ‘라디오21’ 전 대표 양경숙 씨(51)와 서울 강서구청 산하 단체장 이모 씨, H세무법인 대표 이모 씨, 부산지역 시행업체 대표 정모 씨 등 모두 4명에 대해 정치자금법 및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26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서울중앙지법은 27일 오후 3시부터 6시간 동안 이들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를 열었다.

양 씨는 올 2월 “4월 총선에서 민주당 비례대표 공천을 받게 해주겠다”며 단체장 이 씨에게서 17억 원, 세무법인 대표 이 씨에게서 18억 원, 정 씨에게서 12억 원 등 모두 47억 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단체장 이 씨가 다른 두 사람에게 양 씨를 소개했고 양 씨는 이들에게 민주당 비례대표 공천을 약속하며 순위에 따라 액수를 달리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 돈을 ‘라디오21’에 대한 사업투자금 명목으로 꾸미기 위해 계약서를 작성했고 이 가운데 30여억 원을 이 회사의 법인 계좌로 입금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세 명은 올 3월 민주당에 비례대표 공천을 신청했지만 탈락했다.

양 씨에게 돈을 건넨 세 사람은 검찰 수사과정에서 “양 씨가 박 원내대표 등의 이름을 대며 공천을 약속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들이 올 2월 박 원내대표에게 500만 원의 후원금을 내고 3월에는 두 차례나 양 씨와 함께 박 원내대표를 찾아가 만난 사실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박 원내대표 측은 “지난해 말 양 씨 소개로 그들을 만난 적 있고 올 2월에 합법적으로 후원금이 접수된 사실을 확인했다”며 “그러나 박 원내대표를 보고 돈을 건넸다는 것은 사실도 아니고 터무니없는 얘기”라고 말했다.

[채널A 영상]대검 관계자 “양경숙은 ‘전문가’…공천서 영향력 있었다”

○ 뒷돈 종착지가 수사 초점

양씨 “모두 함께 죽자고?” 공천 뒷돈 수수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있는 ‘라디오21’ 전 대표 양경숙 씨가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과 글. 양경숙 페이스북 캡처
양씨 “모두 함께 죽자고?” 공천 뒷돈 수수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있는 ‘라디오21’ 전 대표 양경숙 씨가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과 글. 양경숙 페이스북 캡처
결국 이번 수사의 초점은 문제의 돈 47억 원이 박 원내대표 등 공천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민주당 핵심 관계자에게 전달됐는지를 밝히는 것에 모아질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에서 제명된 현영희 의원이 건넨 3억 원이 당시 공천위원이었던 현기환 전 의원에게 전달됐는지를 수사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검찰은 일단 양 씨가 아닌 제3의 인물이 돈의 최종 종착지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등이 연루된 대형 비리 사건을 수사해온 대검 중수부가 직접 나선 것도 단순히 개인 비리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다만 검찰 관계자는 “중수부로 직접 제보가 들어왔고 공천 뒷돈 명목으로 큰돈이 오고가 사안이 중대하다고 판단했을 뿐”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양 씨는 체포되기 4일 전인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공천 뒷돈 의혹을 강하게 부인하면서도 또 다른 연루자가 있을 가능성을 암시했다. 양 씨는 페이스북에 “지나가는 개도 웃겠다. 공천헌금이라니”라며 “한번 모두 함께 죽자고? 죽으려고? 쓰레기 청소하는 날이 되려나? 얼마나 깨춤을 추고 계실까? 자신들의 무덤인 줄 모르고”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박, 최, 김, 임, 그리고 유”라고 5명을 거론해 이들이 이 사건에 직간접으로 연루됐음을 시사했다.

정치권에서는 양 씨와 친노 그룹 인사들과의 친분설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4·11총선에서 친노계인 한명숙 당시 대표 등이 공천을 주도했기 때문에 양 씨가 그것을 이용하려 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 양경숙과 ‘라디오21’


전북 전주 출신으로 KBS 등 방송국에서 성우와 PD를 지낸 양 씨는 2001년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의 보좌관을 거쳐 2003, 2004년 열린우리당 방송연설기획실장을 맡으며 정치권에서 인맥을 형성했다. 2010년엔 문성근 민주당 상임고문이 대선 승리를 위해 야권 단일정당을 만들자며 시작한 ‘백만송이 국민의 명령 프로젝트’의 집행위원을 지냈다. 양 씨는 정치권 인맥을 바탕으로 2010년 지방선거 등에서 후보자들의 로고송 등을 제작하는 홍보대행 사업을 해왔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의 지지자들은 ‘노무현 라디오’를 만들어 선거운동을 했고 노 대통령 당선 뒤인 2003년 2월에는 ‘라디오21’로 정식 개국했다. 방송국 준비기획단엔 양 씨와 문성근 고문, 배우 명계남 씨, 유시민 전 통합진보당 공동대표 등 친노 인사들이 대거 참여했다. 양 씨는 이 방송의 대표를 지냈고 지금은 편성본부장이다. ‘막말 파문’으로 4월 총선에서 낙선한 김용민 씨가 이 매체를 통해 막말을 쏟아냈다.

최근 새누리당 공천 뒷돈 사건이 터졌을 때 새누리당을 맹공격했던 민주당은 27일 “양 씨와 민주당의 공천거래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 이 사건은 민주당 공천과 관계없는 개인비리 의혹사건”이라고 밝혔다. 정성호 민주당 대변인은 “검찰은 이 사건으로 새누리당 불법비리 사건을 물타기하지 말기 바란다”고 말했다.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김성규 기자 sunggyu@donga.com  
#박지원#공천뒷돈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