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정치 불신이 키운 제3후보 돌풍… 기성정당 벽에 막혀 ‘찻잔속 태풍’으로

  • 동아일보

한국의 대통령 선거사(史)에서 제3후보 돌풍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1992년의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 1997년 이인제 의원, 2002년 정몽준 의원, 2007년 문국현 전 의원이 그들이다. 이들은 모두 대선 직전 돌풍을 일으키며 대통령의 꿈을 키웠지만 누구도 결실을 맺지 못했다.

정치학자들은 제3후보 돌풍의 근원적인 이유를 ‘기존 정치에 대한 불신’이라고 분석한다. 제3후보는 각 언론사의 여론조사로 탄생한다. 여기에 야권 대선주자의 부진과 새로운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이 합쳐지면 ‘돌풍’으로 커지게 된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역시 비슷한 과정을 밟고 있다. 안 원장 역시 그 의미를 알고 있다. 안 원장이 “지금의 지지율은 온전한 지지라기보다는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만의 표현”이라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조희연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신간 ‘민주주의 좌파, 철수와 원순을 논하다’에서 안 원장에 대해 “성공한 기업인이며, 공공적 성격을 갖는 백신을 제공함으로써 기존의 기업가와는 다른 공화주의적 기업인의 모습을 상징한다”며 과거의 ‘문국현 현상’에 빗댔다. 조 교수는 “문국현은 국제통화기금(IMF) 위기를 맞아 노동자를 축소하는 흐름 속에서 ‘4조 2교대’ 혹은 ‘4조 3교대’ 작업 방식을 도입해 일종의 노동공유를 한 ‘공화주의적 최고경영자(CEO)’로서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며 “이는 안철수의 이미지와도 연관된다”고 분석했다.

2007년 문국현 후보 역시 대선 직전 ‘사람중심 진짜경제'라는 슬로건을 앞세워 돌풍을 일으켰지만 막상 연말에 치러진 대선에선 5.8% 득표에 그쳤다. 1992년 정주영(16.3%), 1997년 이인제 후보(18.9%)도 여론조사 때보다 훨씬 못 미치는 성적표를 받았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제3후보 실패의 가장 큰 원인으로 기존 정당에 대한 뿌리 깊은 지지층의 존재를 꼽는다. 선거 때마다 나타나는 30% 안팎의 부동층은 여론조사에서는 ‘인물투표’ 성향을 보이지만 결국 투표소에 가서는 계층, 지역 등 자신들의 이해관계나 정서적 유대감을 통해 만들어진 기존의 지지 정당에 표를 던지는 성향이 강하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은 “제3후보 돌풍의 또 다른 함정은 지지자들 중 상당수가 기존 정치에 혐오를 느끼는 정치적 부동층이라 실제로는 투표장에 가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안 원장 역시 고정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는 민주통합당과의 연대 없이는 과거 제3후보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선거#제3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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