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사람도 국회의원 금배지만 달면 이상해져”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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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한 사람도 의원만 되면 이상해져… ‘속았다’ 딱 그 심경”
■ ‘4년전 한나라’ 공심위원장 안강민 씨 인터뷰

“멀쩡한 사람도 국회의원이 되면 이상한 사람이 된다. 국가관이 확고하지 못하니 표를 의식해 질질 끌려다니게 된다.”

4년 전 18대 총선 때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장이었던 안강민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71·사진)은 당시를 회고하며 “서류와 면접 한 번으로 공천을 결정하는 일이 완벽할 수 있겠나. 의원 개개인이 확고한 국가관과 가치관을 갖고 활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와의 인터뷰는 여러 차례의 요청 끝에 이뤄졌다. 8일 서울 서초동 변호사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한동안 “차만 마시고 돌아가라”고 하다 “18대 국회가 ‘최악의 국회’로 평가받는 건 애초에 공천을 잘못했기 때문 아니냐”고 하자 말문을 열었다. “18대 국회가 최악이기 때문에 속이 상하고 별로 언급을 하고 싶지 않다”면서. 다음은 일문일답.

―새누리당 의원들의 의정활동을 평가한다면….

“형편없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다. 어느 분(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국민도 속고 나도 속았다’는 표현을 한 적 있는데, 내 심경이 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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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천심사 결과를 놓고 당시 ‘영남 중진 학살’ ‘최악’ 등 당내 반발이 심했는데….

“절대 그렇게 생각 안 한다. 아무리 정치상황이 유리했기로 공천을 잘못했다면 180석 가까운 의석을 얻었겠나. 물론 아쉬운 점은 있다. 당시 친이(친이명박)계와 친박(친박근혜)계 싸움이 죽기 살기 식이었다. 가령 한 후보자가 두드러지게 탁월해도 ‘그 사람을 공천하면 친이-친박 형평이 맞지 않게 된다’는 식의 태클이 걸렸다. 친이-친박 싸움이 그렇게 심하지만 않았다면 공천 결과는 다소 달라졌을 것이다.”

―이제는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주도하는 당이 됐으니 달라지지 않을까.

“글쎄, 친이-친박의 싸움은 워낙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터라….”

―법조인 출신을 너무 많이 공천해 ‘율사당’이라는 비난도 있었다.

“검사 출신 의원 중 일 잘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건 사실이다. 당시 공심위에서도 ‘법조인 출신이 너무 많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내가 밀어붙였다. 국회는 입법기관이다. 미국 등 다른 나라는 법조인 출신이 50%가 넘는다. 사람의 문제다.”

―당시 공천 배제자 중 가장 안타까웠던 사람은….


“박희태 국회의장이다. 훌륭한 분이지만 정권을 뒷받침할 집권여당이 되기 위해서는 대폭적인 물갈이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배제했다. 마음속으로 울었다. 2009년 10월 박 의장이 경남 양산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했을 때 직접 내려가 응원했다.”

―공심위 활동이 끝난 뒤 새누리당 인사들과는 만나나.

“전혀. 여의도 쪽은 보지도 않고 살았다. 징그러워서. 공천을 받은 사람은 ‘내가 잘나서’ 식으로 자기 덕으로 돌리고, 탈락한 사람은 나를 원수처럼 여기더라. 공심위원장, 정말 할 일이 못되더라.”

―정홍원 공직후보자추천심사위원장은 검찰 후배다. 선배로서 당부를 한다면….

“정 위원장은 치밀하고 꼼꼼하며 실수가 없는 사람이다. 만만하게 봤다가는 큰코다칠 것이다. 조용한 사람이 작심하면 더 무섭지 않나. 그런데 공천심사가 수사보다 훨씬 어렵더라. 수사는 종료되면 그것으로 종결인데 공천심사는 두고두고 여진과 원성이 남는다. 공천심사가 시작되면 당선 가능성을 가장 높이 평가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가급적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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