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햇볕’도 ‘압박’도 비판… 구체 대안은 없어… 박근혜 ‘포린어페어스’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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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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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23일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질문을 받으면서 국회 본회의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박 전 대표는 이날 미국 외교전문 격월간지인 ‘포린어페어스’를 통해 한반도 문제의 해결 방법으로 ‘신뢰외교’와 ‘균형정책’을 제시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23일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질문을 받으면서 국회 본회의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박 전 대표는 이날 미국 외교전문 격월간지인 ‘포린어페어스’를 통해 한반도 문제의 해결 방법으로 ‘신뢰외교’와 ‘균형정책’을 제시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2009년 5월 미국을 방문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당시 스탠퍼드대 강연에서 “북한의 위기 조성이 협상과 보상으로 이어지는 패턴을 반복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솔직히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박 전 대표가 23일 미국의 외교전문 격월간지 ‘포린어페어스’ 기고문 ‘새로운 한반도를 향하여(A New Kind of Korea)’를 통해 제시한 통일외교안보정책 구상은 2년여 전 스스로에게 던진 숙제에 대한 나름의 해법을 제시한 것이다.

이 기고문의 뼈대를 이루는 두 키워드는 ‘신뢰외교(Trustpolitik)’와 ‘균형정책(Alignment Policy)’. 박 전 대표의 트레이드마크인 ‘원칙과 신뢰’와도 일맥상통하는 개념이다. 박 전 대표의 참모들은 “박 전 대표가 핵심 키워드를 직접 고안했으며 기고문도 직접 썼다”고 전했다.

박 전 대표는 외교안보 전문가들과의 토론을 거듭하며 기고문을 다듬었다. 노무현 정부 후반기 대통령통일외교안보정책수석비서관을 지낸 윤병세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이정민 연세대 국제학대학원장, 류길재 북한대학원대 교수 등이 준비 과정에 깊숙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표는 평소 남북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공감이 필수적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던 중 ‘포린어페어스’ 게재 기회를 얻게 됐고 6월 중순 최종 원고를 넘겼다는 후문이다. ‘포린어페어스’에 글을 실은 국내 정치인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1994년)에 이어 두 번째라고 박 전 대표 측은 설명했다.

일각에선 유력한 대선주자가 사실상 처음 공개하는 통일외교안보정책의 골간을 외국 학술지에 먼저 게재한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박 전 대표는 2005년 미국 헤리티지재단 초청 강연 때는 대북정책과 관련해 ‘보다 대담하고 포괄적인 접근(bolder and more comprehensive approach)’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이번 글에선 ‘보다 대담하고 창조적인 접근(bolder and more creative approach)’으로 바꿨다. 기존의 패러다임이 아닌 좀 더 창의적인 ‘새로운 제3의 길’을 제시하려 고심했다는 게 주변의 전언이다.

그러나 박 전 대표도 ‘손에 잡히는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대북전문가는 “특별히 새로운 내용이 없고 균형정책 등의 용어도 말장난 같아 확 와 닿지 않는다. 제일 걸림돌이 천안함 연평도 문제이고, 현 정부도 이것 때문에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전직 통일부 고위 관료는 “외교적 관점에서 쓴 것 같다. 박 전 대표가 말하는 균형정책은 북-미, 한미, 중-미 관계 속에서 남북관계를 보자는 것인데, 남북관계보다 다른 관계를 우선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반면 이우영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현 정부보다 더 융통성 있게 대북정책을 진행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 북핵-도발에 군사적 대응

박근혜 전 대표는 신뢰외교에 대해 “북한이 저지른 수많은 위반사항을 망각하고, 다시 새로운 인센티브를 보장해 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신뢰외교의 두 원칙으로 △북한이 한국 및 국제사회와 맺은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점과 △평화를 파괴하는 행동에 대해서는 확실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기고문 작성에 조언한 한 인사는 “박 전 대표는 북한이 그동안 보여 온 ‘북한의 위기 조성→협상과 보상’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하다”고 말했다.

실제 박 전 대표는 글에서 “얼마 안 남은 최소한의 신뢰마저 북한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으로 사실상 사라졌다”고 했다. 북한이 이 문제에 대해 사과의 뜻을 밝혀야 신뢰가 회복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박 전 대표는 나아가 “한국은 (북한의) 군사적 도발과 핵 위협으로는 오직 가혹한 대가만을 치를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며 “도발이 반복되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과거보다 단호한 접근이 더욱 분명하게 강조되어야 한다”고 했다.
○ 北 새로 시작할 기회 제공

박 전 대표는 “북한이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며 3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우선 인적, 물적 자유왕래 등을 통한 경제 협력 강화는 유라시아 철도 프로젝트나 개성공단과 같은 산업단지 등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둘째는 해외 투자다. ‘세계은행과 같은 국제기구로부터 개발 지원을 받을 수 있으며 해외 투자를 유치할 수 있다’고 언급한 부분은 박 전 대표가 2006년 9월 독일을 방문했을 때 제시한 ‘동북아개발은행’의 설립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한다. 동북아개발은행은 북한이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한다면 6자회담 당사국과 유럽연합(EU),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등이 투자해 북한, 중국 동북 3성, 러시아 극동지역 등 동북아 지역에 투자하는 개념이다.

이 밖에 남한과 함께 특별경제구역을 설정하는 안의 구체적인 내용은 현재 검토 중이라고 한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그동안 북한은 경제적 인센티브보다 정치적 논리로 움직여 왔다”며 “북한이 그런 기회를 받을 수 있는 여건을 어떻게 만들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 대중정책 등 대외관계

이번 기고문의 소제목인 ‘북한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는 박 전 대표가 생각하는 핵심 대북 정책이라고 참모들은 전했다.

박 전 대표는 미국, 중국 등의 역할에 대해 언급했다. 특히 중국에 대해 “북한의 변화를 촉진하는 중심적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며 “북한의 개혁을 유도하고자 하는 중국의 노력은 미중관계가 얼마나 협력적이냐에 따라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즉 “미중관계가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북한의 비정상적 행태는 미국과의 관계 증진을 희망하는 중국의 입장을 어렵게 하고, 미중관계의 긴장은 북한으로 하여금 미국과 중국을 상대로 외교게임을 시도하게 해 북한의 비타협적인 태도만을 강화시킬 것”이라는 분석이다.

박 전 대표는 세계 최대의 정부 간 안보기구인 ‘유럽안보협력기구(OSCE)’를 아시아가 나아가야 할 모델로 제시했다. 그는 “안보와 경제협력을 함께 도모하는 OSCE 프로세스는 동북아에도 적용될 수 있다”며 “역내 세력들 간 지속되어 온 긴장을 공동으로 해결하기 위한 협력적 안보 레짐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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