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대통령과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가 정권 재창출의 결정적 변수가 될 내년 총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공천 방향에 대해 의견을 나눈 것으로 볼 수 있어 당장 현역 의원들의 ‘물갈이 공포’가 확산되는 조짐이다. 청와대와 박 전 대표 측은 17일 일제히 “공천 원칙을 논의하거나 합의한 바 없다”며 부인하고 나섰지만 총선을 준비 중인 인사들은 공천 논의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 핵심은 현역 물갈이 폭
한나라당 안팎에선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가 내년 총선 공천에 교감한 배경에 대한 분석과 함께 향후 ‘계파 안배 지양’을 어떻게 현실화할지에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 초선 의원은 “박 전 대표가 이 대통령과의 ‘6·3 회동’ 이후 기자간담회에서 ‘친이(친이명박) 친박(친박근혜)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안 된다’고 밝힌 점을 주목해야 한다”며 “이 말을 적극 해석하면 계파 구분 없이 ‘제로베이스’에서 공천을 하겠다는 것 아니냐”고 내다봤다. 이는 ‘계파 프리미엄’을 감안하지 않고 대중성과 능력이 검증된 정치 신인을 대거 영입하겠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친이계의 재선 의원은 “정치 신인을 공천하는 게 반드시 개혁 공천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현역 교체 지수가 공천 개혁의 주요 지표로 사용되어 왔다”며 현역 물갈이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소장파의 한 초선 의원도 “내년 총선에 대해 경각심을 갖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반면 당내 중진들을 중심으로 한 반발 기류도 읽힌다. 상향식 국민공천을 논의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가 공천 방식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주장이다. 정몽준 전 대표는 이날 논평을 내고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자는 논의가 활발한 시점에 만우절 농담도 아니고 자괴감을 갖게 한다”며 “계파 정치의 수렁에 빠진 당의 현실이 드러났다는 점에서 실망스럽다”고 비판했다.
친이계의 한 중진 의원도 이날 본보와의 통화에서 “내년 총선은 당이 해결할 문제로 여기에 대통령을 끌어들이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친박계 일각에서 “박 전 대표는 공천에 대해 논의하거나 들은 바도 없다”고 적극 밝힌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 15대 공천 어땠기에…
한편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회동 전후 청와대에서 1996년 신한국당의 15대 총선 공천을 모범 사례로 꼽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당시 공천 방식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여당인 신한국당 총재를 겸했던 김영삼 당시 대통령은 15대 총선을 앞두고 1년 전부터 차남 현철 씨를 중심으로 보수는 물론 진보 진영의 인재풀을 대대적으로 점검했다. 정보기관의 자료는 물론 자체 여론조사, 면접조사를 거쳐 지역구 별로 3배수 후보를 뽑은 뒤 추가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등 후보들을 엄선했고 아직까지도 총선 승리를 위한 ‘맞춤형 공천’의 모델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현재 한나라당 부설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을 맡고 있는 현철 씨는 “15대 총선 전략은 당 총재를 겸한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측면이 있었다”며 “대권, 당권이 분리된 현재 상황에서는 시도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2004년 17대 총선 공천도 수작(秀作)이라는 평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후폭풍으로 흔들리던 한나라당은 박근혜 대표-김문수 공천심사위원장을 내세워 기존의 계파 안배보다는 당선 가능성과 참신성, 전문성 등을 기준으로 개혁 공천을 주도했다. 그 결과 121석을 건져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