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기업, 美 이란제재 동참요구에 깊은 시름

  • 동아일보

“일시적 교역중단보다 후폭풍이 더 걱정”

거래 끊긴 이란 멜라트은행 서울지점 미국이 대이란 경제 제재에 한국도 동참해줄 것을 요구하고 나선 가운데 3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이란 멜라트은행의 서울지점에도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한-이란 무역금융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이 은행은 미국 재무부의 제재 대상에 포함돼 국내 은행과의 거래가 사실상 중단됐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거래 끊긴 이란 멜라트은행 서울지점 미국이 대이란 경제 제재에 한국도 동참해줄 것을 요구하고 나선 가운데 3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이란 멜라트은행의 서울지점에도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한-이란 무역금융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이 은행은 미국 재무부의 제재 대상에 포함돼 국내 은행과의 거래가 사실상 중단됐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른 대(對)이란 제재에 이어 미국 정부가 이란 경제제재에 동참해 달라고 한국에 요구함에 따라 정부와 경제계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정부는 국내 기업에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즉답을 피하며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천안함 폭침사건 이후 한미 공조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어서 미국 측의 요구를 뿌리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당장 이란과의 교역이 위축되는 것도 문제지만 이란 제재가 풀린 뒤에도 한국 기업들이 상당기간 큰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이 더 걱정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 교역차질 불가피

우리은행 등 채권단이 추진하는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 작업이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채권단은 그동안 이란계 다국적 가전유통회사로 중동 최대 가전업체인 엔텍합 인더스트리얼 그룹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해 가격 조정 협의를 진행해 왔다.

그러나 6월 9일 유엔 안보리의 제재 결의 1929호가 나온 뒤 채권단 내부의 분위기가 회의적으로 바뀌고 있다. 채권단 고위 관계자는 “이란 제재에 한국도 동참하기로 결정하면 국내 기업을 이란 업체에 매각하겠다는 기존 결정을 재고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란 현지에 진출한 기업들도 초조해하고 있다. 특히 이란의 수도 테헤란은 철강, 화학제품 등의 거래가 활발한 중동의 거점시장으로 두바이와 함께 주요 종합상사들의 지사가 밀집해 있다. KOTRA에 따르면 대기업만 하더라도 삼성물산 LG상사 SK네트웍스 GS건설 대림산업 STX 두산중공업 등 18곳이 이란에 진출해 있다. 또 원유, 가스 개발과 연계해 화학 및 건설 프로젝트가 지속적으로 발주되는 플랜트 유망시장이어서 건설업계에도 비상이 걸렸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나중에 이란 사태가 해결된 이후에도 한국 기업들이 괘씸죄에 걸려 큰 불이익을 받을 것을 우려한다. 2005년 미국이 주도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이란 핵 관련 결의안에 한국이 찬성하자 이란은 그해 말부터 이듬해 3월까지 한국 제품의 수입을 전면 금지한 바 있다. 지난해 대이란 수출액은 39억9200만 달러에 이른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대중동 수출 비중이 점점 커지는 상황이어서 제재에 동참한다면 국내 기업의 타격이 불가피하다”며 “특히 ‘반(反)한국 정서’가 확산될 경우 중동 전체에서 국내 기업이 고전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당국자는 “관계가 정상화되더라도 이란 정부와 거래처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 시장을 회복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걱정했다.

○ 이란 금융회사 거래 이미 끊겨

로버트 아인혼 미국 국무부 대북제재 조정관은 3일 기획재정부를 찾아 김익주 국제금융국장을 비롯한 당국자들과 비공개 면담을 했다. 김 국장은 “대북 금융제재 및 대이란 제재와 관련해 미국 측이 내용을 설명했으며 한국 정부도 동참하는 의미에서 협조해달라는 자리였다”며 “미국 측이 주로 이란 제재 법안을 설명했다”고 밝혔다.

아인혼 조정관의 이란 제재 동참 요구는 유엔 안보리 결의와 미국 대통령이 7월 1일 서명해 발효된 독자적인 이란 제재법에 근거를 두고 있다. 안보리 결의에 따른 제재는 모든 회원국의 의무사항이어서 한국도 이행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한국에 더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미국 단독의 이란 제재법이라는 게 외교소식통의 설명이다.

이란 제재법은 이란의 석유, 가스 개발과 관련한 투자와 계약을 금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단순 용역 제공까지 차단하고 있다. 또 이란 기업 및 은행과도 거래하지 못하도록 했고 이를 위반하면 미국 은행과의 거래까지 제한하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미국 은행과의 거래를 제한당할 수 있는 파급효과를 감안할 때 이란 기업 및 금융회사와의 거래를 중단해야 하는 처지”라고 말했다.

실제로 국내 시중은행들은 지난달 미 정부로부터 제재대상으로 지정된 이란의 멜라트은행을 포함해 13개 금융회사와의 거래를 금지했다. 대부분의 국내 기업은 이란 기업과 거래할 때 시중은행을 통해 이들 13개 금융회사를 주요 창구로 활용하고 있어 공사대금을 제때 받지 못하거나 자금 결제에 애를 먹고 있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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