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쇄신’ 격돌… 초선의 창 vs 靑참모 방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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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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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선→참모 “쇄신을 권력투쟁으로 몰며 구명 구걸”
“靑 잇단 실수로 민심 멀어져
MB, 쇄신 칼자루 쥘수 있게
초선들 나서 연판장 돌린것”▼


고민 이명박 대통령이 11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7차 미래기획위원회 ‘미래비전 2040’ 보고대회에서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고민 이명박 대통령이 11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7차 미래기획위원회 ‘미래비전 2040’ 보고대회에서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여권 내 지방선거 후폭풍이 당청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한나라당 소장파는 청와대 참모진에 패배의 책임을 묻고 있다. 일부 참모가 이명박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며 국정을 왜곡한 결과가 선거 참패로 이어졌다는 주장이다. 이들 소장파는 참모진의 개편에 여권 쇄신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에 맞서 청와대 참모들은 책임론을 인정할 수 없다며 자신들을 겨냥한 공세의 이면에는 소장파들이 대신 여권의 권력을 차지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반발하고 있다. 양측의 주장은 무엇인지, 누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갈등의 와류 속에 있는 세력들의 정치적 배경은 무엇인지를 짚어본다.》
한나라당 김성태 의원은 11일 초선 의원 쇄신 모임에서 “(청와대 참모들이 최근) ‘초선들이 잘못이 없는 우리를 물고 늘어진다’며 언론에 (구명을) ‘구걸’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 “초선 의원들의 순수한 목소리를 권력투쟁으로 몰아가는 청와대 참모들이 있다면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6·2지방선거 참패를 계기로 청와대 참모진의 인적 쇄신을 주장하고 나선 일부 초선 의원들의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초선 모임을 주도한 친이(친이명박)계 정태근 의원도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지방선거 패배의 책임이 가장 큰 곳은 한나라당이지만 선거의 본질은 여권 전체에 대한 평가와 견제”라고 말했다. 청와대의 잘못된 국정운영 결과가 선거 패배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쇄신파 초선 의원들은 그동안 청와대 참모들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거론하지는 않았다. 이들이 꼽은 청와대 참모들의 구체적인 잘못된 행태는 무엇일까.

정 의원은 “올해 3월부터 국정 운영과 관련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을 꼽아 봤더니 22가지나 됐다”며 “이 얘기가 전해져 한 장관이 국무회의에서 ‘모 의원이 조사해 보니 정부가 잘못한 게 22가지가 있다고 하더라’고 말해 현재 각 부처가 자기 부처 소관 업무가 있었는지 파악하느라 난리”라고 전했다.

특히 지방선거 직전 청와대와 정부의 행태가 민심을 더욱 멀어지게 했다는 생생한 사례가 거론됐다. 한 친이계 초선 의원은 “대통령이 천안함 관련 담화를 전쟁기념관에서 발표하도록 한 게 누구냐. 참모라면 당연히 말렸어야 했다”고 말했다. 지나친 안보이슈화가 야당의 ‘전쟁 위험론’을 주목하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선거에 악영향을 미친 점을 지적한 것이다.

또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이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고 행사장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못하게 한 것도 청와대의 정무적 판단의 한계를 보여준 사례로 꼽혔다.

김 의원은 “한 수석비서관은 말실수가 잦았고 귀족적인 이미지로 서민정책을 알리는 데도 부적합했으며 다른 수석비서관은 ‘공기업선진화 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해 공기업과 공무원 조직의 인심을 잃었다”고 주장했다. 친이계 신지호 의원은 “특정인을 언급할 생각은 없다”면서도 “4대강 사업은 대국민 홍보에 실패한 대표적 사례”라고 지적했다.

청와대 참모들에 대한 초선 의원들의 누적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한 초선 의원은 “지난해에도 당내 소장파들이 쇄신을 들고 나왔을 때 한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기자들에게 ‘공부도 하지 않고 노는 애××가 아버지에게 술 마시지 말라고 하면 되겠느냐’는 말을 했다”며 “당청 관계를 바라보는 참모들의 인식이 그만큼 한심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비판했다.

한 친이계 핵심 초선 의원은 청와대 참모들의 인적 쇄신을 촉구하는 배경에 대해 “대통령에게 청와대 참모들을 정리할 수 있는 칼자루를 쥐여주기 위해 서명에 참여했다”고 설명했다. 인적 쇄신에 대한 청와대 수석들의 저항이 심각한 상황에서 이 대통령이 청와대 개편을 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반면 서명에 참여하지 않은 정미경 의원 등은 “당의 잘못된 공천과 인재 영입 실패가 선거 패배의 중요한 원인인데도 모든 책임을 청와대에 돌리는 것은 옳지 않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참모→초선 “黨이 엉터리 공천 해놓고 靑에 총구 겨눠”
“자리에 연연하지 않지만
대안없는 권력투쟁 안돼”
내부적으론 서로 견제도

청와대 참모들은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며 한발 물러서는 태도지만 안으로는 한나라당 소장파의 물갈이 주장에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참모들은 우선 일부 당 인사가 지방선거 패배의 책임이 청와대에 있다고 규정하는 것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견해다. 한 핵심 참모는 “당에서 멋대로 엉터리 공천을 해놓고 이제 와서 청와대에 총구를 겨누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참모는 “서울시장 선거 개표 때 왜 새벽까지 손에 땀을 쥐어야 했느냐. 초선 모임을 이끄는 서울 관악구 출신 의원이 구청장 공천을 잘못해 그 지역에서 표가 안 나왔기 때문 아니었느냐”고 따졌다. 이 참모는 또 “경기도는 강원 등 다른 곳과 비교해 전통적으로 여당에 불리한 곳이지만 김문수 후보는 지역을 훑고 다니며 전면전을 벌여 이겼다. 하지만 강원 등 다른 지역은 야당 후보들이 독기를 뿜고 덤비는데도 고정 지지층만 생각하며 편하게 선거에 임한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한나라당 후보들이 선거 운동을 안이하게 해 놓고 청와대 탓을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얘기다.

참모들은 당에서 쏟아지는 인적쇄신 요구 속에는 ‘권력투쟁’ 요소가 상당 부분 숨어 있다고 보고 있다. 그동안 권력에서 소외됐던 인사들이 선거 패배 책임을 청와대 참모진에 떠넘김으로써 권력을 되찾으려 하고 있다는 시각이다.

정무라인의 한 참모는 “소장파들의 요구에는 두 가지가 빠져 있다. 쇄신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콘텐츠가 부족하고, 옛날에 썼던 문제해결 방식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것”이라며 “우리가 그들의 요구를 이성적으로 수용하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은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 국정운영의 큰 틀을 고민하는 상황 아니냐”고 말했다.

참모들은 당의 압박에는 공동으로 맞선다는 점에선 ‘한 배’를 탄 상태지만 내부적으로는 참모들끼리 견제하며 긴장을 풀지 않는 ‘따로 또 같이’ 모습도 보이고 있다. 정무, 민정, 홍보라인 등이 선거 이후 서로 책임을 뒤집어쓰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물밑에서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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