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원주]인쇄물 주고 파일제출은 거부한 환경과학원 국감

  • 입력 2009년 10월 15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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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환경노동위원회의 환경부 산하기관에 대한 국정감사가 열렸던 국회. 민주당 김재윤 의원 앞에는 A4 용지로 가득 찬 상자 16개가 쌓여 있었다. 김 의원이 4월부터 요구한 자료를 국감 시작 30분 전인 이날 오후 1시 반경에야 제출한 국립환경과학원에 대한 항의 표시로 쌓아둔 것이다. 김 의원은 “피감기관의 이런 태도는 국감을 하지 말라는 의미”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환경과학원은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김 의원은 “인쇄물로 제출한 자료를 컴퓨터 파일 형태로 다시 제출하라는 요구를 과학원이 아예 거절했다”고 밝혔다.

김 의원이 요구한 자료는 4대강 살리기 공사가 끝난 후 수질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를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예측하기 위한 기초 데이터. 김 의원은 컴퓨터 파일 자료를 요청한 것은 “입력 자료 자체를 검증하는 작업과 함께 해당 자료를 직접 컴퓨터에 입력해 정부 주장이 맞는지 확인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환경부의 국감 마지막 날은 이달 22일. 열흘도 안 되는 기간에 방대한 자료를 세세하게 검토하기는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환경과학원은 “인쇄물 자료로도 충분히 검토할 수 있다고 판단해 파일 제출을 거부했다”고 설명했다. 직접 시뮬레이션을 돌리려면 파일 형태의 자료가 더 효율적이지 않겠냐고 묻자 환경과학원은 “김 의원실에서 자료 제출을 요구할 때 그런 용도로 쓰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며 “환경과학원이 시뮬레이션 결과를 갖고 있는데 김 의원실이 다시 돌릴 필요가 있느냐”고 오히려 되물었다.

그러나 제출받은 국감 자료를 어떻게 검증할지에 대해 국회가 일일이 정부에 설명해야 할 의무는 없다. 피감기관이 국회의 요구에 성실하게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는 의무만 있을 뿐이다. 환경과학원의 태도는 누가 봐도 자료를 제대로 검증할 수 없게 하기 위한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우리에게 결과물이 있으니 의원이 검증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은 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하기 위한 제도인 국감의 본질을 부정하는 처사다.

김 의원을 비롯한 환노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오류를 검증해 내겠다”며 벼르고 있다. 국민도 환경과학원이 계속 자료 협조를 거부하는 것을 보면 ‘뭔가 큰 허점이 있는 것 아니냐’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인쇄물은 되고 파일은 안 된다는 자세는 오만하다. 잘못이 없다면 떳떳하게 공개하면 된다. 자료는 정직하게 공개하고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 검정을 받는 것이 정도다.

이원주 사회부 takeof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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