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파트너 예우… ‘테이블 웃음꽃’

  • 입력 2009년 9월 17일 02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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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 유럽특사 결과 보고… 오랜만에 ‘뒤끝없는 독대’
李, 국정전반 폭넓게 설명… 접견뒤 손흔들며 배웅

16일 정치권의 눈은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함께한 43분간의 단독회동에 쏠렸다. 여권 내 정치적 지분을 분할하고 있는 두 지배주주가 만난 자리였기 때문이다.

특히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와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 등 여권 내 차기 대선주자군이 부상하는 예민한 시점에서 이뤄진 독대여서 더욱 관심을 끌었다.

이날 하늘색 블라우스에 회색 바지정장을 입은 박 전 대표가 청와대 백악실에 들어서자 역시 하늘색 넥타이를 맨 이 대통령이 반갑게 맞았다. 가벼운 인사말을 주고받은 뒤 박 전 대표는 곧바로 이 대통령에게 “순방 결과를 보고드리겠습니다”라며 유럽 특사 활동의 성과를 상세히 보고했다. 보고가 끝난 뒤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는 다른 참석자들을 물린 채 자리를 옮겨 따로 대화를 나눴다.

두 사람은 국정 현안 전반에 걸쳐 폭넓은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에선 이 대통령이 주요 국정 방향을 설명하고 박 전 대표의 이해와 협조를 구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친박(친박근혜)계인 최경환 의원 입각을 거론하며 계파 화합의 의지와 진정성을 전달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박 전 대표는 “의견 교환이 있었고, 공감한 부분도 있었다”고 밝혔다. 또 “(이 대통령이) 올해 5월 내가 미국 스탠퍼드대에 가서 한 연설문을 보셨다고 했다. 북한, 경제 문제에 대해 공감한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의견 교환이 있었다는 말은 사실상 의견 일치를 보지 못했다는 의미다. 무엇보다 세종시 문제 해법을 놓고 이견을 보였을 것이란 관측이다. 박 전 대표는 행정부처 이전은 ‘약속’인 만큼 지켜야 한다는 쪽이다.

단독 회동에 앞서 이 대통령이 박 전 대표에게 “앞으로도 국가적으로 중요한 문제와 관련해 해야 할 일이 있는 곳에 박 전 대표가 특사로 나서면 좋겠다”고 말한 것을 놓고는 해석이 분분하다. 특사에 한정하긴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 대통령이 박 전 대표를 국정 동반자로 예우하겠다는 생각을 내비쳤다는 분석이 있다. 장차 대북특사 등을 제안할 것이라는 성급한 관측도 나온다.

여하튼 4대강이나 세종시 문제 등과 관련해 양측 간 이견이 완전히 해소되기는 어렵지만 이번 회동을 통해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가 일정 부분 서로를 인정하며 화해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했을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양측 간 독대는 작년 1월과 5월, 올해 1월에 이어 4번째다. 그동안은 독대 후 뒤끝이 안 좋았다. 친박 의원 복당 문제로 의견이 갈렸거나, 비공개 회동 사실이 뒤늦게 공개돼 박 전 대표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적도 있다. 이번에는 분위기가 괜찮았다는 얘기가 나온다. 대화를 끝내고 문을 나설 때 박 전 대표의 표정이 밝았다고 한 참석자는 전했다. 청와대는 독대 내용을 일절 밝히지 않고 박 전 대표에게 공개 여부를 일임하는 모양새를 취하는 등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한편 박 전 대표는 유럽 방문 성과를 보고하면서 “일정이 빡빡했지만 만날 사람은 다 만났다. 큰 보람이 있었다”고 말했다. 또 “이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부터 유럽과의 관계에 대해 아쉬움이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특사단 활동을 설명하는 자리에선 국내 정치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주로 박 전 대표의 보고를 조용히 경청하다 중간 중간에 “고맙다” “수고했다”며 노고를 치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통령은 “중요한 시기에 특사단이 성공적인 업무 수행으로 큰 역할을 해줬다”며 “생각 같아선 브라질에도 한 번 다녀와 달라고 말하고 싶은데 비행시간만 30시간이 넘어 차마 말씀을 못 드리겠다”며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박선규 청와대 대변인은 “여러 차례 웃음이 터지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접견이 진행됐다”고 전했다. 당초 단독회동을 포함해 1시간가량 접견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30분 이상 길어졌다. 이 대통령은 회동이 끝난 뒤 접견실 밖으로 나와 손을 흔들며 특사단을 배웅했다. 박 전 대표는 환한 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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