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억류 유씨, 강압조사에 자살까지 생각했다”

  • 입력 2009년 8월 26일 02시 55분


“北억류 유씨 남북합의서 일부 위반”
정부, 조사결과 발표
체제비판 편지 北여성에 보내
수면방해-욕설 등에 허위자백

《북한에 137일간 억류됐다 13일 풀려난 현대아산 근로자 유성진 씨(44·사진)가 북한 당국의 조사 과정에서 욕설과 무릎 꿇리기, 수면 방해 등 강압에 의한 허위 진술을 강요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통일부와 국가정보원으로 구성된 정부합동조사반은 25일 “북한 당국이 유 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강압 행위가 있었다”고 발표했다. 특히 정부 당국자는 “유 씨가 남측 정보기관의 지령을 받았다고 허위 진술을 하라는 강요에 못 이겨 자살까지 생각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 편지에 북한체제 비판

유 씨는 개성공단 숙소의 청소를 담당하는 북한 여성과 교제하면서 수차례 보낸 편지에 북한 최고지도자와 체제에 대한 비판, 남한 내 탈북자들의 생활과 탈북 과정 등을 썼다가 북한 당국에 적발됐다. 합동조사반은 “북한이 편지를 물증으로 제시한 것으로 볼 때 이 여성이 당국에 신고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또 합동조사반은 유 씨가 2003년 금강산사업소 직원으로 근무할 당시 과거 리비아에서 사귀던 북한 여성 간호사의 근황을 알려달라고 북한 여성에게 요청한 것도 억류의 원인이 됐다고 밝혔다. 유 씨가 1998∼2000년 건설회사 직원으로 리비아에 파견됐을 때 사귄 이 간호사는 유 씨와 탈북에 관한 얘기를 나눈 사실이 발각돼 북한에 소환된 것으로 알려졌다.

○ 정보기관 연루 허위 진술 강요

북한은 3월 30일 유 씨를 개성 내 자남산여관으로 이송해 3층 방에 구금했다. 북한 당국은 억류 직후부터 6월 말까지 매일 오전 6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유 씨를 나무의자에 똑바로 앉힌 뒤 진술을 강요하고 반말과 욕설 등 언어 폭력을 행사했다. 조사는 다음 날 오전 1시까지 진행되기도 했다.

북측은 억류 기간에 구타 등 신체에 대한 직접적 가혹행위는 하지 않았고 한 끼에 평균 9가지의 반찬이 있는 하루 세 끼 식사를 제공하고 수면도 보장했다. 그러나 북측은 취침 시에도 불을 끄지 않아 수면을 방해하고 10여 차례에 걸쳐 3∼5분간 무릎을 꿇리기도 했다.

북한 당국은 ‘최고지도자 비판과 탈북 유도’의 동기와 배후에 대한 자백을 요구했으며 특히 리비아에서 북한 간호사를 탈북시키려 했다는 혐의와 관련해 ‘남측 정보기관의 지시를 받았다’고 허위 자백할 것을 강요했다. 유 씨는 이를 거부하며 두 차례 단식을 하기도 했으나 결국 허위 진술서를 작성했다고 합동조사반은 밝혔다. 북한은 유 씨에게 “공화국법에 따라 형사 처벌한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북한은 조사가 끝난 6월 말 이후에는 하루 30분가량 정원에서 산책하도록 허용했다. 정부 당국자는 “조사가 끝난 6월 말 이후에도 독서나 TV 시청을 허용하지 않아 유 씨가 그때부터 혼자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정밀 검진 결과 유 씨의 건강에는 특별한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명됐다고 이 당국자는 덧붙였다.

○ 정부 “남북합의서 보완 필요”

유 씨는 석방 이틀 전인 11일 △자신의 범죄행위를 인정한다는 것 △수사에 협조하지 않아 조사 기간이 길어졌다는 것 △조사 과정에서 가혹행위는 없었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북측에 제출했으며 북한 당국은 이를 녹화했다.

정부는 “유 씨가 2004년 남북이 체결한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관광지구 출입 및 체류에 관한 합의서’ 일부를 위반했으나 북한도 조사 과정에서 합의서의 기본권 보장 규정을 위반했다”며 북한에 유감을 표시했다. 또 정부는 “억류 근로자의 구체적인 혐의를 알릴 의무도 규정돼 있지 않고 조사 기간이 길어져도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는 현재의 합의서 내용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며 앞으로 북측과 협의를 통해 시행세칙 등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정부 당국자는 “유 씨가 사전 승인 없이 북한 주민을 접촉해 국내법인 남북교류협력법을 위반했지만 오랜 기간 억류되는 고통을 당했기 때문에 추가 조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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