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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6월 12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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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라’는 신호는 아닌듯
남북한 당국은 11일 2차 개성공단 실무회담에서 ‘개성공단 현안’에 대한 서로의 동상이몽을 다시 확인했다. 북측은 개성공단 토지 임대료 5억 달러 요구 등 남측이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사항을 제시했고 남측은 이날로 74일째 억류 상태인 현대아산 근로자 A 씨 문제의 해결을 강하게 주장했지만 허사였다. 북한은 이날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면서도 남측 대표단을 정중하게 대하고 향후 협상을 강조하는 등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다.
○ 인질 잡고 5억 달러 요구
이 돈을 누가 낼지도 문제다. 현대아산은 자금력이 없고 정부투자기관인 토지공사가 낼 경우 국민 세금을 북측에 제공한다는 국내 여론의 비난이 불가피하다. 정부가 남북협력기금으로 충당하는 것도 어렵다. 미국 등 국제사회가 북한에 대한 금융제재를 단행하는 상황에서 남한이 북한에 현금 5억 달러를 주는 것은 대북 제재를 위한 국제공조에 역행하는 것이다. 국내 여론도 호의적일 리 없다. 이 때문에 한 북한 전문가는 북측의 태도에 대해 “A 씨를 억류하고 5억 달러를 요구하는 것은 ‘인질범 국가’의 행태”라고 꼬집었다.
○ 겉으로는 협상 강조하는 양면성
김영탁 남측 수석대표는 귀환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회담 분위기는 부드러웠고 북측은 요구사항을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이 아니라 향후 협의하자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북측의 요구가 결국 남측 기업들을 나가라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북측은) 그런 뜻이 없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고 했다.
북측은 이날 오전과 오후 두 차례 열린 회담에서 남측의 기조발언 내용을 경청하고 추가 협상을 갖자고 여러 차례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4월 21일 1차 실무회담 때와는 사뭇 다른 태도다. 북측은 당시 자신들의 통지 내용을 읽은 뒤 남측이 통지문을 읽으려 하자 이를 제지했고, 일단 받아간 통지문을 다시 회송하는 등 고압적인 자세로 일관했다.
○ 엇갈린 평가 속 정부의 딜레마 커져
이런 북한의 태도를 놓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한 정부 당국자는 “북측도 자신들의 요구가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것을 잘 알 것”이라며 “개성공단 폐쇄나 남측 기업 쫓아내기가 아니라 향후 협상을 통해 적정한 이익을 챙기기 위해 초기 제안을 부풀린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난달 25일 2차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의 제재가 강화되고 미국과의 대화 전망도 밝지 않은 대외적 상황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구도 구축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대내적 상황 등을 고려해 상황을 관리하면서 경제적 실리를 챙기려 한다는 것이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한국 정부를 궁지로 몰아넣기 위한 고도의 전술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는 개성공단의 유지와 안정적 발전을 강조해 왔으며 억류된 A 씨 석방을 위해서라도 추가 협상에 응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북측이 추가 협상에서 5억 달러 요구 등 요구조건을 완화하지 않을 경우 문제는 복잡해진다. 북측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은 국내외의 비난 여론을 부를 것이 뻔하고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개성공단 폐쇄의 책임을 져야 한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