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잠시 민주당 옷 벗겠다” 했지만…

  • 입력 2009년 4월 11일 02시 56분


무소속 당선되더라도 당 버린 원죄 ‘발목’
금의환향 쉽지 않을 듯

‘지역구 포기’ 정세균 대표, 鄭 전 장관 탈당에 맞불
일각 “대선 출마 의지” 해석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은 10일 서울 여의도 민주당 당사에서 가진 탈당 기자회견에서 초췌한 모습으로 “모든 것이 저의 업보” “많은 번민과 고민” “종아리를 때려 달라” 등의 표현을 써가며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두 차례의 당 대표와 대선후보까지 지낸 사람으로서 자신의 옛 지역구(전북 전주 덕진)에서 당의 공천을 받지 못해 13년간이나 몸담았던 당을 떠나는 정 전 장관으로서는 만감이 교차할 만도 하다. 그는 회견에서 △1996년 정계 입문 △2000년 당내 정풍(整風) 주도 △2002년 대선 경선 완주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 △2004년 노인 폄훼 발언에 따른 비례대표 후보 사퇴 △2007년 대선과 2008년 서울 동작을 총선 패배 등을 하나하나 회고하면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고 눈물을 삼키기도 했다.

정 전 장관은 ‘회자정리(會者定離)’를 언급하면서 “만나면 반드시 헤어진다는 말이지만 이 말은 곧 ‘헤어지면 반드시 다시 만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복당 의지를 강하게 드러낸 발언이다. 하지만 그가 무소속으로 당선되더라도 복당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개인의 이익을 앞세워 당을 버렸다는 ‘원죄’가 두고두고 발목을 잡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가 당에 돌아온다 해도 예전 같은 위상을 차지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앞으로 대선주자를 지낸 ‘큰 정치인’이기보다는 ‘지역 정치인’이라는 평가에 만족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탈당과 함께 정치 인생의 중요한 변곡점에 선 셈이다. 한 의원은 “불과 1년 전 4·9총선 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 때 ‘당분간 쉬겠다.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고 한 사람이 왜 그렇게 서둘렀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의 공천 배제를 결정한 정세균 대표도 이날 19대 총선에서 호남인 현재 지역구(전북 장수·무주·진안·임실)에서는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지금이야말로 당을 위해 자신을 버리고, 큰일을 위해 잠시 참으며, 단합을 위해 충돌을 자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정 전 장관의 무소속 출마 강행을 강한 톤으로 비판했다. 정 대표의 이 같은 발언은 다음 총선에서 자신의 수도권 등 비(非)호남권 출마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정 전 장관을 압박하기 위해 나온 조치로 보인다. 일각에선 정 대표가 2012년 대선 출마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라는 얘기도 없지 않다. 한편에선 현행 지역구가 다음 총선 때 그대로 유지되지 않을 가능성을 겨냥한 것이란 시각도 있다. 어쨌든 정 대표도 정 전 장관의 문제에 자신의 정치적 명운을 건 것이다. 이석현 의원은 “정동영이나 정세균이나 모두 답답한 사람들”이라며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리 사실로 가뜩이나 당이 어려운데, 우리끼리 총질을 하다니…”라고 말했다.

전주 덕진 유권자들의 심경도 복잡다단해 보였다. 자신들이 키워줬다는 자부심을 가졌던 정치인의 ‘처량한 귀환’에 대해 배신감과 안타까움이 교차하는 듯했다. 덕진공원에서 만난 오정기 씨(62)는 “모처럼 전북에서 큰 정치인을 배출했다고 생각했는데 이철승처럼 돼버리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한 노인도 “그때 이철승을 잘 낳아 놓고는 키워주지를 못 했어”라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1971년 ‘40대 기수론’을 내걸고 김대중(DJ) 김영삼(YS) 전 대통령과 함께 대선주자로 평가받던 이철승 전 의원의 몰락에 빗대 정 전 장관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한 것이다.

인후동 모래내시장에서 건어물가게를 하는 한 50대 여성은 “정동영은 너무 이기적이다. 자기 힘들다고 한번 떠난 지역구에 다시 돌아오면 되겠느냐”고 말했다. 택시운전사 김천기 씨(51)는 “자기 맘대로 지역구 정해 출마하는 정동영이나, 정동영한테 밀릴 것 같으니까 내쫓는 정세균이나 똑같다”고 두 사람을 동시에 비난했다. 전북대 앞에서 만난 오경미 씨(22·여·전북대 3년)는 “선거 자체에 관심을 꺼버렸다”면서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동아닷컴 임광희 기자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이력

―1978∼1995년 MBC 기자, 앵커

―1996년 15대 총선 전국 최다 득표 당선

(전주 덕진)

―1996∼1999년 새정치국민회의 대변인,

김대중 총재 특보

―2000년 16대 총선 전국 최다 득표 당선

(전주 덕진)

새천년민주당 대변인, 최고위원

―2000년 말 권노갑 2선 후퇴를 주장하며

정풍(整風) 주도

―2002년 16대 대선 새천년민주당

선거대책위 공동위원장

―2004년 초대 열린우리당 의장

―2004년 7월∼2005년 12월

통일부 장관

―2006년 2∼6월 열린우리당 의장

―2007년 6월 열린우리당 탈당

―2007년 12월 17대 대선 대통합

민주신당 후보

―2008년 4월 17대 총선 서울 동작을 낙선

―2009년 4월 10일 민주당 탈당, 전주 덕진

무소속 출마 선언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전주=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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