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첫 정치적 사건… 北, 일방통보후 접촉 끊어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3월 31일 02시 54분



北, 개성공단 남측직원 억류-조사

통행차단-미사일 예고 등 잇단 대남공세
南직원 단순실수라도 당분간 억류 불가피
北 “남북합의 준수”… 대화 물꼬 될수도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앞두고 한반도 주변의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남북의 접촉면’인 개성공단에서 또 우리 국민이 억류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아직 사실관계가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았지만 어떤 경우라도 사건의 파장은 만만치 않아 보인다. 남측 근로자의 단순한 실수라도 당분간 억류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사건 진상은 북측만이 알고 있어=북한이 30일 통지문으로 주장한 현대아산 근로자 A 씨의 혐의는 체제 비방과 함께 북한 여성 근로자를 유인해 탈북을 기도한 것으로 사실일 경우 북한 입장에서는 중대한 범죄에 해당한다.
이에 대해 정부의 한 당국자는 “A 씨가 평소 친하게 지내던 여성 근로자에게 말실수를 한 경미한 사건일 경우 조사 후 추방되는 것으로 마무리될 수 있다”고 기대했다. 그러나 다른 당국자는 “A 씨가 만일 책잡힐 일을 했고 북한이 충분한 증거를 확보하고 있는 경우나 북한이 사건을 유도했고 부풀려 조작했을 경우엔 문제가 매우 심각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문제는 지난해 7월 11일 발생한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과 마찬가지로 진상 규명의 키를 전적으로 북한이 쥐고 있다는 데 있다. 정부는 이날 오전 북한이 일방적으로 보내 온 통지문 외에 북한 당국과 접촉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묘한 시기에 미묘한 내용=지난해 사건과 같이 이번 사건도 미묘한 시기에 발생했다. 북한 미사일 발사가 다음 달 4∼8일로 예고되고 북한이 한미 연합군사연습 ‘키 리졸브’를 이유로 남북 육로 통행을 세 차례나 막은 뒤에 터졌다.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드러나지 않은 현재로서는 북한이 어떤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북한이 올해 들어 남한에 대한 비방과 무력도발 위협 등을 강화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이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중국 접경지역에서 탈북자 문제를 취재하던 미국 국적의 여기자 2명이 북한에 억류된 사건과 관련해 미국이 이들의 석방을 위해 북한과 물밑 대화를 추진하고 있는 시점에 이런 사건이 터진 것은 심상치 않다.
이번 일이 북한이 개성공단 내에서 처음으로 적발한 정치적 사건이라는 점도 예사롭지 않다. 통일부에 따르면 2004년 이후 지난해 8월 말까지 모두 223건의 사고가 발생했지만 산업재해가 179건(80%), 교통사고 32건(14.3%), 형사사건 11건(4.9%)의 순이었다.
▽누가 어떤 조사를 벌일까=A 씨를 조사하는 주체는 북한의 체제 유지를 위해 간첩 및 내부 협조자를 색출하는 국가안전보위부일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 당국자는 “현재 조사에 입회하고 있는 우리 측 인력은 없다”고 말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북한이 조사 과정에 남북 간 합의를 준수하겠다고 먼저 밝혀왔다는 점이다.
2004년 남북 합의에 따르면 북측은 피조사자의 기본권을 존중하고 조사 내용을 남측에 통보해야 한다. 피조사자는 혐의의 경중에 따라 경고 또는 범칙금을 내거나 남측으로 추방된다. 다만 남과 북이 합의하는 엄중한 위반행위에 대하여는 쌍방이 별도로 합의해 처리할 수 있어 이번 사건을 계기로 남북 당국 간 대화가 열릴 가능성도 없지 않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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