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던 北 ‘판정승’… 당장 실질적 혜택 누릴지는 미지수

  • 동아일보
  • 입력 2008년 10월 13일 02시 55분



■ 정부 당국자 “조건부 해제”

北이 얻는 것 - 국제사회 오명 벗지만 상징적효과 그칠 수도

美는 왜 양보 - WP “부시, 北 2차 핵실험 감행 우려해 해제”

그럼 한국은 - 북핵 진전에 맞춰 적극적 대북지원 검토










‘북한과 미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

북-미가 북한 핵 검증방식에 합의하고 미국이 20년 9개월 만에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한 데 대해 외교 전문가들은 12일 이렇게 평가했다.

한 고위 외교 소식통은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북핵 진전’이란 외교적 성과가 절실했고, 북한은 미국의 다음 정권을 누가 잡든 부시 행정부와 합의한 테러지원국 해제 문제를 협상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다고 판단을 내린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협상의 실질적인 득실을 따지면 북한 쪽이 판정승했다는 분석이다.

○ 북한의 이득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테러지원국이라는 오명을 벗게 됐다. 미국의 전면적인 제재 해제는 북-미 관계 정상화 이후 이뤄질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당장은 실질적인 이득보다는 상징적 효과가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은 미국의 테러지원국 해제로 △수출관리법 △무기수출통제법 △대외원조법 △국제금융기관법 △적성국교역법 등 5개 규제 법률에서 자유로워지게 됐다. 특히 국제금융기관법에서 해금되면서 북한은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IBRD) 등 국제금융기구로부터 차관을 제공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그러나 테러지원국 해제만으로 북한이 원하는 만큼 당장 실질적인 경제적 혜택을 누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북한이 가장 절실해하는 국제금융기구의 차관만 하더라도 북한의 행동 여하에 따라 미국이 얼마든지 제동을 걸 수 있다. 정부 당국자는 “테러지원국 해제는 ‘조건부 해제’라고 해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 속에서 북한에 달러를 수혈할 국가나 국제기구도 현실적으로 많지 않은 실정이다.

○ 미국의 양보

미국은 북핵 협상에서 ‘대폭적인’ 양보를 했다. 특히 ‘순차적 검증’과 미신고 핵시설에 대한 ‘상호 동의’는 그간 부시 행정부가 요구해 온 ‘완전하고 정확한’ 핵 검증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

외교 전문가들은 “부시 행정부가 거의 유일한 외교성과로 꼽고 있는 북핵 협상마저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만은 막아보겠다는 절박감이 바탕에 깔린 결과”라고 분석했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재가동해 지난 8년간의 북핵 외교를 원점으로 되돌리는 것보다는 일부 비판이 있더라도 북한과 협상하는 게 낫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이게 임기 내 이룰 수 있는 최상의 선택”이라며 부시 대통령을 설득해 재가를 받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북한이 신고하지 않은 시설에 대해서는 북한의 동의를 얻어야만 검증이 가능하도록 합의한 것은 실질적인 검증을 봉쇄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 때문에 테러지원국 해제라는 압박카드를 너무 쉽게 내줬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부시 행정부 일각에서도 나오고 있다.

서울의 한 외교 소식통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실패와 북핵에서의 ‘물 탄 검증’ 수용 등으로 부시 대통령은 외교 과목에서 낙제점을 받게 됐다”고 평가했다.

○ 한국의 기대

정부는 북한에 대한 미국의 테러지원국 해제를 환영하면서 이번 조치가 향후 남북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길 기대했다. 6자회담의 한국 수석대표인 김숙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12일 내외신 브리핑에서 “6자회담 정상화와 북한의 궁극적인 핵 포기에 기여하는 계기가 마련된 것으로 평가하고 환영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북핵 문제 진전에 맞춰 대북 식량 지원, 개성공단 숙소 건설, 대북 통신 자재 및 장비 제공 등을 더욱 적극적으로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미 관계의 진전이 남북관계 정상화로 발전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외교가에서는 벌써부터 “북한으로서는 남북관계 개선의 필요성이 오히려 더 줄어들게 된 만큼 남측과는 한층 가파른 각을 세우려 할 가능성이 있다”는 비관론도 나온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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