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권력 공백→ 장성택 중심 집단통치→권력투쟁 본격화”

  • 입력 2008년 9월 24일 03시 06분


■ 3가지 상황별 시나리오 분석

김정일 신체장애 - 장성택-김옥 대리인 내세워 외교-안보 챙길듯

의식불명 장기화 - 비밀유지하며 새 지도자 띄우기 물밑작업 추진

사망후 권력승계 - 집단지도체제 한계… 시간 갈수록 균열 불가피

미국 정보기관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무력화(의식불명) 또는 사망하더라도 북한 체제가 급속히 붕괴되지는 않을 것으로 분석한 것으로 23일 전해졌다.

위싱턴과 서울의 소식통 얘기를 종합하면 미 정보기관은 북한 내부의 안정을 유지할 수 있는 요인으로 △수십 년간의 1인 독재 체제를 가능하게 한 세뇌교육 △현재 구조 내에서 특권과 혜택을 받고 있는 노동당과 군부의 엘리트들이 근본적인 구조적 변화를 원하고 있지 않다는 점 등을 꼽았다.

그러나 미 정보기관은 당분간 북한 체제가 유지되더라도 결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만큼 김 위원장 사후 북한 지도체제가 내부 안정을 유지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며 중장기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미 정보기관이 김 위원장의 건강상태와 그에 따른 북한 권력승계 구도를 시나리오별로 분석한 것을 소식통들의 전언 등을 통해 재구성했다.

①신체적 장애만 있을 경우

미 정보기관은 김 위원장이 신체적 장애만 있을 경우 최소한의 권한을 가진 대리인을 내세워 배후 조종을 할 것으로 분석했다. 김 위원장은 과거부터 자신의 후계자 지명을 꺼려왔다.

미 정보기관은 김 위원장이 내세울 대리인으로 그의 매제(여동생 김경희 노동당 경공업부장의 남편)인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과 실질적인 부인 역할을 하고 있는 김옥 국방위원회 과장을 지목했다.

이런 판단의 근저에는 김 위원장이 중요한 정치적 결심을 할 때 자문 역할을 하는 참모그룹을 활용하지 않고 있으며 각종 정책이 개인비서를 통해 전달되고 있다는 점 등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대리인이 생길 경우 김 위원장은 외교 정책과 안보 문제에만 직접 개입하고 나머지 사안에는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을 것으로 미 정보기관은 전망했다.

그러나 미 정보기관은 김 위원장의 장애가 발생한 이후 처음 몇 개월 동안엔 노동당과 군 원로들이 김 위원장의 대리인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겠지만 지속적으로 각종 검열방문이나 고위자 접촉이 없을 경우에는 일부 엘리트 사이에서 김 위원장의 후계자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했다.

②무력화 상태가 장기 지속될 경우

미 정보기관은 만약 김 위원장이 의식불명 등 무력화 상태라면 권력승계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내분이 발생할 것으로 분석했다.

다만 김 위원장이 무력화 상태일지라도 새로운 대리지도자(집단지도부)가 북한 통치에 대한 정당성과 권한을 주장하기 어려운 만큼 한동안 김 위원장의 건강상태를 비밀로 유지하면서 북한의 정상적인 통치 분위기를 외부에 보여주는 데 주력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회복할 것 같지 않다는 징조나 의심이 증폭될 경우 대리지도자는 통치권한을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할 것이기 때문에 김 위원장 사망 때까지 각계각층으로부터 동의를 받는 한편 주민들에게는 새로운 지도자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주안점을 둘 것으로 미 정보기관은 분석했다.

③김정일 위원장 사망할 경우

미 정보기관은 김 위원장이 사망할 경우 최초의 북한 통치구조는 집단지도체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집단지도체제 구성원들이 지난 수십 년간 김 위원장과 그 부친인 김일성 전 주석에게 충성을 해왔기 때문에 김 위원장의 가족 중 한 사람이 집단지도체제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면 북한 통치에 대한 연속성과 정당성이 유지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다시 말해 집단지도체제는 김 위원장의 사망 초기 북한 내부 안정을 유지하는 데 최선의 방안이란 것이다.

그러나 미 정보기관은 김 위원장의 세 아들 중 한 명이 집단지도체제의 실질적인 리더가 될 것으로 보지는 않았다. 오히려 김 위원장의 매제인 장 부장이 집단지도체제를 이끌 차기 지도자가 될 것으로 분석했다.

그 이유로는 김 위원장의 장남인 김정남이 김 위원장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차남인 김정철과 삼남인 김정운은 아직 20대로서 경험이 부족하고 북한 주민들에게조차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을 꼽았다.

이와는 반대로 매제인 장 부장에 대해서는 그의 집안이 군 지도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고, 그가 노동당에서 두터운 신망을 얻고 있는 데다 안보기관을 장악하고 있어 김 위원장 사망 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미 정보기관은 시간이 흐를수록 집단지도체제가 흔들릴 것으로 내다봤다. 그간 김 위원장이 주변 인물들의 권력 집중 가능성을 막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왔다는 점에서 집단지도체제를 구성하는 인사들 간에 경쟁과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한 소식통은 “미국이 북한의 미래를 상정한 시나리오별 대응책 마련에 나선 것으로 봐야 한다”며 “백악관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중앙정보국(CIA), 국방부 등이 김 위원장이 칩거 중인 현재 상황을 분석하는 한편 ‘김정일 이후’와 관련한 각종 중장기 대책에 대해 활발한 논의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eawon-h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