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북핵 6자회담 참가국 외교장관들이 23일 싱가포르에서 회동했다. 2003년 8월 북핵 6자회담이 출범한 이후 5년 만에 처음으로 이뤄진 장관급 회동이었다.
6개국 외교장관들은 6자회담의 목적인 북핵 폐기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하고, 북한이 제출한 핵 신고서에 대한 검증체계 구축 방안을 논의했다.
특히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박의춘 북한 외무상을 만나 금강산 관광객 총격 사망 사건 등 양측 현안에 대해 의견을 개진했다고 정부 당국자가 전했다.
▽6개항 합의, 그러나 결실은 많지 않아=6개국 장관들은 비핵화 2단계(핵 신고 및 검증)의 조속한 마무리와 이를 위한 참가국들의 필요한 조치 이행을 위한 6개 항의 합의를 도출했다고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의 양제츠(楊潔지) 외교부장이 밝혔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결실은 많지 않다. 새로운 논의도 없었다. 회동 시간이 한 시간에 불과한 데다 참가국들의 속내가 복잡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한국과 미국은 북한에 대한 미국의 테러지원국 해제 조치가 발효되는 시점인 8월 11일 이전에 북핵 신고서에 대한 검증 절차에 착수해야 한다는 의견을 개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북한은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따라 미국이 절차를 밟고 있는 테러지원국 해제 조치가 함께 발효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북측 대표단의 대변인을 맡고 있는 이동일 외무성 군축과장은 회담이 끝난 뒤 “박 외무상은 북한 정부의 완전한 의무 이행 의지를 밝혔으며,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따라 다른 나라의 상응조치도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북한 6자회담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 이근 미주국장 등 북한 측 북핵 라인은 이번 회담에 전원 불참했다.
일본은 끈질기게 자국민 납치 문제의 선(先)해결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에 금강산 사건 관련 정부 뜻 충분히 전달”=유 장관은 회담이 끝난 뒤 박 외무상과 따로 만나 금강산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를 수용할 것을 촉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당국자는 “유 장관은 박 외무상과 간단한 대화를 나눴다. 우리의 뜻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는 기회로 봤다”며 “남북문제 현안(금강산 사건)이 테이블에 올랐다고 이해해도 좋으며 구체적인 이야기들도 거론됐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또 “남북간 현안이 6자회담에 불가피하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인식을 공유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유 장관은 한중, 한미 양자회동에서도 금강산 사건을 언급하며 “진상이 명확히 규명되고 재발 방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제츠 중국 외교부장은 “불행한(unfortunate) 사건이다. 남북한 간 대화를 통해 원만하게 해결되기를 기대한다”고 했고,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우리 정부의 방침에 동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유 장관과 라이스 장관은 남측의 진상조사단 파견을 실현하기 위한 미국의 지원 방안을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당국자는 미국의 지원 방안과 관련해 “회담 기간 중 미 측이 직접 언급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동일 북한 외무성 군축과장은 “금강산 사건은 북남 관계이고 외무성에서 관할하는 문제가 아니다”며 답변을 피했다.
유 장관은 또 라이스 장관에게 독도에 대한 역사적 배경, 독도 사건에 대한 민감성 등을 상세히 설명했다고 정부 고위 당국자는 전했다.
한편 유 장관은 6자 외교장관회담이 끝난 뒤 고무라 마사히코(高村正彦) 일본 외상과는 대화를 나누지 않아 독도 문제로 인해 경색된 한일관계를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