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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7월 9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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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의 비핵화=국제질서 개편?
지난달 북한과 미국이 핵프로그램 신고서 제출과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절차 착수를 교환하고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한 뒤 북한의 ‘진심’에 대한 궁금증이 다시 커지고 있다. 북한은 핵을 포기할 것인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핵프로그램 핵시설 핵물질은 물론 핵무기까지 내놓겠다는 결단을 한 것인가. 9개월 만에 내일 북핵 6자회담이 재개되지만 북한의 의도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그런 상황에 조선신보가 북한이 국제질서 개편을 주도하기 위해 핵 포기를 추진한다는 뜻밖의 주장을 들고 나왔으니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김 위원장이 핵 문제를 끌고 가려는 방향을 가늠하게 하는 단초가 담겨 있는 것 같아 기사를 꼼꼼히 읽었다.
제3자가 조선신보 보도의 진위(眞僞)를 당장 가릴 수는 없지만 소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북한 핵 외교가 체제 유지나 경제지원을 바라는 차원이 아니라는 주장을 염두에 두었다가 실제 행동과 비교하는 잣대로 활용할 수 있다. 북한이 상응하는 행동을 하면 조선신보의 보도는 사실에 근거한 뉴스가 되고, 반대라면 거짓 선전이 된다.
김 위원장이 정말로 핵을 포기할 생각이고 국제질서 개편까지 바란다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올림픽은 단순한 스포츠 행사가 아니다. 개최국의 총체적 수준을 가파르게 높이는 계기가 될 뿐 아니라 때로는 국제사회의 판도를 흔드는 괴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88 서울 올림픽을 되돌아보자. 동서 진영의 대립으로 모스크바 올림픽(1980년)과 로스앤젤레스 올림픽(1984년)이 줄줄이 반쪽 대회가 됐다. 88올림픽은 양쪽으로 갈라진 세계를 8년 만에 봉합한 평화의 제전이었다. 미수교국으로, 가장 위협적인 주변대국이던 옛 소련과 중국까지 선수단을 보내 한국 국민의 환영을 받았다. 올림픽이 밑거름이 되어 우리는 2년 뒤인 1990년 옛 소련과, 다시 2년 뒤인 1992년 중국과 각각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경기장의 관중과 TV 앞의 시청자들이 스포츠 스타들의 수준 높은 경기에 열광하는 사이 올림픽판(版) 평화와 화해의 역사가 만들어진 것이다. 1981년 9월 30일 독일 바덴바덴에서 서울 올림픽 개최를 알린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의 육성(肉聲) ‘아 라 빌 드 세울(서울에서)’은 한국의 융성뿐 아니라 동서의 화합까지 예고하는 신호였다.
국제사회와 화해 가능하다
베이징 올림픽도 서울 올림픽에 못지않은 평화 잠재력을 갖고 있다. 내달 8일 개막식에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참석한다. 이명박 대통령도 간다. 호스트는 북한의 형제국인 중국이다. 중국은 이미 시진핑 국가부주석을 평양에 보내 김 위원장에게 개막식 참석을 요청했다. 북한을 위해 기꺼이 멍석을 깔아주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중국 외교부는 며칠 전 김 위원장의 개막식 참석 여부에 대해 “어떤 정보도 갖고 있지 않다”면서도 “구체적인 정보가 있다면 발표하겠다”고 말해 참석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다. 베이징 올림픽을 평화의 제전으로 준비할 시간은 충분하다.
김 위원장은 외국 여행 체질이 아니지만 중국은 다섯 차례나 방문했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을 비롯한 중국 지도부도 잘 안다. 김 위원장이 국제사회와 화해할 뜻이 있다면 중국의 주선으로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서 한국과 미국 대통령을 만나는 것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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