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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5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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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의장 임기 마치는 임채정 국회의장
행정부 견제 제대로 하려면
여당은 많이 듣고 포용하고
야당은 정책 대안 제시해야
국민 시각에서 보는게 중요
現헌법 시대변화 반영 안돼
이젠 개헌 논의할때 아닌가
새정부, 자기확신 너무 강해
좀 더 정제해야할 필요있어
《올해는 국회 개원 60년, 헌법 제정 60년이 되는 해다. 1948년 5월 10일 남한만의 총선거를 통해 선출된 국회의원들은 같은 달 31일 제헌국회의 문을 연다. 국회는 같은 해 7월 17일 헌법을 제정한다. 이날이 제헌절의 기원이다. 6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국회는 국민의 대표기구로서, 대의민주주의의 상징으로서 한국 현대사와 영욕을 함께해 왔다. 17대 국회가 막을 내리는 29일 의장 임기(2년)를 마치면서 현실정치에서도 물러나는 임채정 국회의장을 집무실에서 만나 헌정 60년의 의미와 국회의 위상 강화 방안, 여야 국회의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 등을 들어봤다. 임 의장은 “하루살이, 하루살이 하고 살았는데 (임기가 하루 남았으니) 오늘만큼은 나는 진짜로 하루살이다”라는 농담으로 시작해 1시간 동안 인터뷰에 응했다.》
인터뷰=심규선 편집국 부국장
―5월 31일로 국회가 개원 60년을 맞는다. 현직 국회의장으로서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국회 개원 60주년이라는 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정식으로 시작된 게 60년이 됐다는 뜻이다. 그동안 파란만장한 세월을 겪어 왔다.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나라 가운데 정치(민주화)와 경제(산업화)가 모두 성공한 유일한 나라다. 국회는 이 과정에서 민주주의의 초석으로 많은 역할을 해온 헌법 제도였고 기구였다. 60주년의 의미를 살리면서 앞으로의 60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대다수가 정치에 불만을 갖고 있지만 국회가 나름대로 상당한 노력을 해온 것도 사실이다. 비판과 함께 균형 잡힌 평가를 해야 한다.”
―60년 동안의 국회에 대해 비판도 없을 순 없다.
“서구 선진국이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넘긴 건 1980년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이었다. 우리는 15년 정도 늦게 2만 달러를 달성했다. 선진국은 300년 자본주의 역사를 갖고 있지만, 한국은 이제 겨우 50년 정도다. 물론 압축성장을 해 왔기 때문에 기본이 잘 이뤄지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의 성장이 저지당하고 있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충분한 저력을 갖고 있다. 한국민의 잠재력을 살릴 수 있는 철학을 갖고 끌고 나간다면 더 발전할 수 있다. 지금 한국이 이룬 업적들이 민간이 중심이 돼 이뤄진 게 아닌가 하는 점도 덧붙여 두고 싶다.”
―국회의 역할 중 하나가 행정부를 견제하는 것이다. 현재의 국회가 이를 제대로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국회는 행정부를 견제하는 동시에 정부를 돕는 측면도 있다. 예전에는 이러한 역할이 일방적이었다. 여당은 정부에 대한 비판에는 입을 닫고, 야당은 무조건 행정부를 공격했다. 요즘은 이 같은 편향이 중화되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논쟁을 벌일 때도 ‘이것은 여야의 문제가 아니라 국회와 정부의 문제’라며 갈등을 해소하는 것을 종종 봤다. 이런 모습이 확산돼야 한다. 여당 내에서도 정부 비판이 나와야 한다. 국회는 국민의 대표기관이다. 국민의 입장에서 사안을 바라봐야 한다. 다만 정부가 잘하는 일은, 또는 잘해야만 하는 일은 적극 도와야 한다.”
―여당이었던 옛 열린우리당이나 통합민주당이 행정부를 잘 견제했다고 보나.
“17대 국회에서는 여당 의원들이 정부를 견제하는 사례가 많았다. 심지어는 정부 정책에 반대를 하거나 자유투표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같은 경향이 각 당으로 확산되리라 본다. 아주 중요한 사안은 당론투표를 해야겠지만 일반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자유투표를 늘릴 필요가 있다.”
―18대 국회를 시작하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여당 마인드를 갖는 게 쉽지 않다. 여당은 많이 듣고 포용해야 한다. 여당은 싸움하기도 쉽지 않고, 정부를 감쌀 수도 없을 때가 있다. 지혜가 필요하다. 넓은 마음으로 함께 가는 모습을 보일 것을 당부드린다. 야당은 이래저래 시간이 가면서 국민과 괴리된다. 국민이 기대고 싶은 야당이 되어 달라. 국민이 원하는 것을 잘 정책화한다거나 대안을 제시하면서 국민의 삶과 일치되어야 한다. 야당이 되면 더 바빠지고 몸도 고달파진다.”
―국회의장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을 직권상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데….
“직권상정은 다수결의 원칙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다. 다수결 원칙이 소수에 의해 방해받을 때 비상조치로 채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17대 국회에서 소수당인 한나라당이 직권상정을 요구하고 있다. 더욱이 상정을 했다고 해서 통과될 가능성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
―개헌론이 나오고 있다.
“2006년 국회의장을 맡으면서 국회 안에 개헌특위를 만들려고 했지만 대선을 앞둔 미묘한 시점이어서 그만뒀다. 내가 개헌을 지지하든 반대하든 헌법에 대해서는 의견이 많다. 특히 우리 헌법은 권위주의 정권과 민주화 세력 간의 타협의 산물이다. 이제는 개헌을 논의할 때가 됐다고 본다.”
―개헌을 한다면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하나.
“헌법이 만들어진 지 오래됐다. 많은 부분을 고쳐야 한다. 예를 들어 인터넷 시대에는 정보권이 필요하다. 정보의 차별 또는 배제가 문제된다. 소수 인권에 대한 문제 즉, 사회권에 대한 문제도 있다. 결혼이민자와 그 자녀가 20만명이나 되는데 국가가 그들에게 어떤 대우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헌법적 근거도 있어야 한다. 많은 부분을 수용하고 국민적 토론을 거쳐야 한다.”
―개헌 대상에 권력구조의 변화도 포함되나.
“대통령 연임제가 됐건, 이원집정부제나 내각제가 됐건 권력구조 변화를 들여다볼 때가 됐다. 다만 개헌 논의가 정략적이어서는 안 된다. 한국의 헌정사에서 국민 합의로 헌법을 만든 적이 없었다. 권력자가 자기 이익을 위해 헌법을 고쳤다. 그렇게 되면 헌법의 권위가 없어진다. 국민들 사이에서 ‘헌법? 그게 뭔데’라며 경시하는 분위기가 형성돼선 안 된다.”
―국회의장으로서 2년간을 보낸 소회는….
“개인적으로 행운이 따라줬다. 개원 60주년을 맞는 국회의 후반기에 의장을 했다. 관례를 볼 때도 더 높은 선수(選數)의 의원들이 의장을 했어야 했다. 나는 그런 면에서 젊은 국회의장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한국의 국회의장 임기가 2년으로 묶여 있다는 점에서는 아쉬움도 남는다. 2년은 큰 계획을 세우거나 개혁을 이뤄내기에는 짧은 시간이다.”
―재임기간의 업적을 꼽는다면….
“짧은 임기 동안에 멋진 업적을 남기는 건 무리다. 다만, 원칙에 따라 국회가 운용되도록 최선을 다했다. 입법조사처를 만들고 로스쿨 법이나 국민연금법 등 장기간 지체되던 법안을 통과시킨 정도가 아닐지….”
―이명박 정부 3개월을 어떻게 보나.
“좀 더 정제해야 할 것 같다. 자기 확신이 너무 강한 것 같고, 전 정부와의 차별화를 너무 의식하는 것 같다. 국민이 변화했다는 것을 인식하고 국민과 소통하고 국민의 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젊은 세대에게 주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젊은 사람들보고 미래를 준비하라고만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앞으로 할 일이 많다는 점에서 부단히 준비해 달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그러나 젊을 때는 왜 준비를 해야 하는지 그 필요성을 잘 모른다. 자기가 매우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늘 의식하면서 자신을 닦아나가야 한다.”
정리=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 임채정 국회의장
△ 1941년 전남 나주
△ 1959년 광주제일고등학교 졸업
△ 1964년 고려대 법학과 졸업
△ 1969∼1975년 동아일보 기자
△ 1979년 통일주체 대의원에 의한
대통령선거 반대 국민회의 공동대표
△ 1987년 직선제 개헌 및 민주쟁취 국민운동본부 실행위원
△ 2000∼2002년 국회 남북관계발전 지원특별위원회 위원장
△ 2002년 새천년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
△ 2003년 제16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
△ 2004∼2006년 국회 통일외교통상 위원회 위원장
△ 2005년 열린우리당 의장
△ 14, 15, 16, 17대 국회의원
△ 2006년 17대 국회 하반기 국회의장(현)
▼“몸싸움-고함 제재수단 있어야…영국선 질서 어기면 감치 조치”
국회의장 질서권 강화 수차례 강조▼
“손해를 볼지언정 몸싸움은 하지 말아 달라. 하지만 이런 말 쉽게 못한다. 수단을 많이 갖고 있는 여당에 아량을 갖고 타협해야 한다는 뜻이다. 야당이 몸으로 저항하겠다며 불합리한 행동을 하는 것도 없어져야 한다. 국회는 다수결이 최고의 원칙이다. 다수결을 따라 주지 않으면 의회민주주의는 성립하지 않는다.”
국회에서 여야 간 몸싸움을 지켜봐야 하는 국회의장의 심경은 참담할 수밖에 없다. 임채정 의장은 28일 인터뷰에서 “어려운 주문을 좀 하자”며 국회 내 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고언을 내놓았다.
임 의장은 국회 회의장에서 고함 몸싸움 야유가 오가는 것에 대해 “의원들이 자율적으로 법 준수를 하지 않을 때는 타율적 수단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국회에 법은 있으나 사문화돼 버려 여야가 충돌하면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며 “질서 유지를 위해 의장이 내리는 지시가 먹히는 구조나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의회민주주의의 본산인 영국 의회에 설치된 감치(監置) 시설을 예로 들었다. 임 의장은 “수백 년 전 이야기겠지만, 의원이 기본질서를 어기면 가둬가면서까지 (올바른 의정 활동을 위한) 단호한 조치를 했다”고 소개했다. 특히 국회의장이 “Order(질서를 지키시오)”라고 말하면 여야 의원들이 말싸움을 하다가도 곧바로 멈추고 회의장의 질서를 잡는 영국의 오랜 관행을 거론했다.
몸싸움 등을 주도하는 정치인이 국민의 선택을 받아 또다시 국회로 돌아오는 데 대한 문제점도 지적했다. 그는 “지역 구도를 포함해 시민사회, 국민이 맡아야 할 심판의 메커니즘이 정상적으로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