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은 잡았지만… 공천 갈등 ‘시한폭탄’

  • 입력 2008년 2월 12일 02시 57분


손학규 대통합민주신당 대표(앞줄 왼쪽)와 박상천 민주당 대표가 11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통합과 쇄신을 위한 공동선언식’을 갖고 양당 통합을 선언한 뒤 악수를 하며 자축하고 있다. 안철민 기자
손학규 대통합민주신당 대표(앞줄 왼쪽)와 박상천 민주당 대표가 11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통합과 쇄신을 위한 공동선언식’을 갖고 양당 통합을 선언한 뒤 악수를 하며 자축하고 있다. 안철민 기자
총선 앞두고 호남표-진보세력 결집 노려

공동대표제 합의… ‘법적 대표’는 孫으로

‘균형공천’ 명시했지만 지분싸움 심할듯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은 이번 양당 통합으로 4월 총선에서 그동안 이탈했던 호남 및 진보개혁 세력 등 전통적 지지계층의 결집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합당이 곧 유권자들의 지지로 이어지기에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많다.

▽민주당의 양보=양당은 당초 설 연휴 전까지 통합 논의를 끝내기로 했지만 ‘공동대표 등록’ 문제를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해 5일 사실상 협상 결렬을 선언했다.

대통합민주신당이 ‘공동대표 체제로 하되 손학규 대표만 법적 등록’을 주장한 반면 민주당은 ‘손학규 박상천 공동 법적 등록’을 고수한 것.

민주당은 “다수당인 신당에 대한 최소한의 견제장치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공동 등록을 요구했지만 대통합민주신당은 ‘합당 불가’의 배수진을 치며 완강히 거절했다.

대통합민주신당의 고위 관계자는 “선관위에 제출할 공천자 명단에는 법적 대표의 도장이 찍혀야 한다. 이는 공천의 최종 승인권이 법적 대표에게 있다는 의미다”라면서 “공동 등록을 할 경우 과거 민주당의 ‘옥쇄파동’이 재연될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옥쇄파동이란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당시 민주당 조순형 대표와 추미애 선거대책위원장이 서로 다른 도장이 찍힌 공천 명단을 선관위에 제출한 사건이다.

박 대표가 11일 오전 전격적으로 ‘공동 등록’을 철회한 데는 자금난에 시달리는 당 사정과 함께 유일한 호남 지역구 의원인 최인기 원내대표가 ‘합당 무산 시 탈당’을 시사하며 박 대표를 압박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 원내대표는 신당 김원기 전 국회의장과 함께 설 연휴 기간에 물밑 협상 작업을 주도해 왔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최 원내대표가 탈당할 경우 민주당은 호남 지역구 의원이 한 명도 없는 호남 정당이 된다”면서 “호남 지역구 의원이 한 명도 없는 민주당이 총선에서 무슨 명목으로 살아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합당은 했지만…=양당은 이날 합당 선언을 계기로 본격적인 총선 체제로 돌입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후 각종 당내 현안에서 ‘공동대표 합의제’가 마찰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많다.

특히 호남 지역 공천 문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될 것으로 보인다.

비록 합의문에 ‘양측이 신의를 갖고 객관적 기준에 의해 균형 있는 공천을 한다’고 명시했지만 호남 지역구 의원이 한 명에 불과한 데다 챙겨줘야 할 원외위원장이 많은 민주당으로서는 ‘객관적 기준’ 자체에 대해 의구심이 많다.

민주당의 한 고위 관계자는 “객관적 기준을 이유로 여론조사를 적용한다면 현역 의원이 절대 다수인 대통합민주신당이 절대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로 당이 삐걱거릴 경우 가뜩이나 국민의 지지가 멀어진 상황에서 더욱 차가운 대접을 받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온다.

▽우여곡절 합당=양당은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범여권 대통합을 위해 통합을 추진했으나 지분 싸움 및 신당 내 각 계파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됐다. 지난해에도 두 차례 통합협상을 진행했으나 실패한 바 있다.

특히 대선 직전인 지난해 11월에는 당시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대선 후보, 오충일 대표와 민주당 이인제 대선 후보, 박상천 대표가 공식적인 합당 선언까지 해놓고도 신당 내 각 계파 간의 이해관계 때문에 10일 만에 전면 백지화된 바 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영상취재: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2003년 친노 주도로 갈라섰다

2008년 친노 배제후 한몸으로▼

■ 신당-민주당 재결합하기까지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인 2003년 4월 정동영 천정배 신기남 의원 등 당시 새천년민주당 내 친노(親盧·친노무현) 의원 18명은 탈당을 선언하고 ‘분당(分黨)’ 작업을 본격화했다.

대선 승리 직후부터 당의 발전적 해체를 주장해 온 ‘천·신·정’ 등 친노 세력은 2003년 9월 교섭단체 등록을 마치고 같은 해 11월 47석의 의석을 가진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당시 열린우리당의 창당은 노 대통령 당선 이후 친노 세력이 민주당 구세력을 배제하고 친노무현 정당을 만들기 위한 정계 개편이었다.

열린우리당은 2004년 4월 총선에서 노 대통령 ‘탄핵 후폭풍’ 속에서 과반수 의석(152석)을 확보하는 등 기세를 올렸지만 이후 국민의 외면 속에 모든 재·보궐선거와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다.

결국 ‘열린우리당 간판으로는 어렵다’는 공감대가 당내에서 확산되면서 친노 세력의 ‘당 사수론’과 반노 및 비노그룹의 ‘당 해체론’이 끊임없이 충돌했다. 우여곡절 끝에 대통합민주신당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지만 대선 참패 이후 이해찬 전 국무총리, 유시민 의원 등 대표적 친노 의원들의 탈당으로 친노 세력은 사실상 와해됐다.

분당과 열린우리당 창당을 주도했던 친노 세력은 노 대통령 임기 말에 이뤄진 이번 합당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됐고 남아 있는 친노 의원들도 공식 반응을 자제하고 있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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