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준, 회사돈 빼낼 때마다 돈세탁 지시

  • 입력 2007년 1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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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찰이 조사한 횡령수법

계좌번호 - 입출금경로 적어주며 “현금화 꼭 거쳐라”

200억이상 인출… 에리카김, 항의한 회계직원 해고

‘BBK 주가조작 사건’의 핵심인물 김경준(41·수감 중) 씨는 창업투자회사 옵셔널벤처스코리아의 직원들에게 여권 위조 방법 이외에 자금세탁과 주가조작 방법도 구체적으로 지시했던 것으로 20일 드러났다.

▽‘수표→현금→수표’ 통해 자금세탁=본보가 최근 입수한 2002년 검찰의 수사기록에 따르면 옵셔널벤처스코리아의 회사 자금을 주로 담당한 직원은 오모(여) 차장과 이진영(여) 대리, 여직원 곽모, 김모, 육모 씨.

김경준 씨는 돈이 필요할 때마다 오 차장에게 입금할 계좌번호를 전달했다. 회사 회계장부에는 김 씨와 그의 부인 이보라 씨의 가지급금(대주주 등에게 임시로 지급하는 돈)으로 적혔다. 2001년 5월부터 2002년 1월까지 200억 원 이상을 이런 방식으로 인출했다.

오 차장은 메모지에 계좌번호 여러 개와 경유 순서를 꼼꼼히 적어 주며 여직원 김 씨에게 전달했다. 그러면서 오 차장은 “거액을 출금할 경우 반드시 수표를 중간에 한 차례 현금화하라”고 지시했다.

실제 오 차장이 여직원 김 씨에게 50억 원을 인출하라고 지시하면 김 씨는 A은행의 서울 강남구 삼성동 지점에서 옵셔널벤처스코리아의 법인계좌에 보관 중이던 50억 원을 인출해서 같은 은행에 있는 페이퍼컴퍼니(서류상의 회사) 법인계좌에 입금했다. 하루 뒤 김 씨는 B은행의 삼성동 지점에서 페이퍼컴퍼니 회사 계좌에 보관 중이던 돈을 전액 수표로 인출했다. 이 돈을 같은 은행 지점에서 모두 현금화한 뒤 이를 다시 수표로 발행해 법인계좌에 입금했다.

이 과정에서 자금세탁방지법 등으로 거액의 수표를 현금화하는 것이 곤란하다는 은행 직원들과 다퉜고, 현금 액수가 크면 여직원 1명을 추가로 은행 창구에 파견하기도 했다. 직원들은 검찰에서 “계좌추적을 피하기 위해 자금세탁을 지시한 것 같다”고 말했다.

▽에리카 김 씨, 가지급금 정리 요구한 직원 해고=자금 담당을 맡은 육모 씨는 김경준 씨가 출국하기 전 “가지급금을 정리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김 씨는 이모 과장에게 알아보라고만 했다.

이후 육 씨는 옵셔널벤처스코리아가 코스닥 상장회사이기 때문에 돈의 용처를 공시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주장했으나 이 과장은 “투자금 증자로 허위 공시하면 되지 않느냐”고 지시했다.

육 씨가 이를 거부하자 2002년 1월 김 씨의 누나인 에리카 김 씨가 회사를 방문해 육 씨에게 지급한 회사 출입카드키를 빼앗은 뒤 해고했다.

당시 에리카 김 씨는 옵셔널벤처스코리아의 이사였으며, 사무실에 가끔 찾아와 김경준 씨와 대화를 나누고 회의에도 참석했다.

▽직원들 뒤늦게 불법인지 파악=김 씨는 2001년 12월 위조된 여권을 이용해 미국으로 도피한 이후에도 e메일을 통해 회사 자금 처리 내용을 매일 보고받았다고 한다. 스피커폰으로 직원들과 원격회의도 자주 열어 구체적인 업무지시까지 계속 했다는 것.

이 때문에 직원들은 김 씨가 크리스마스 휴가를 떠난 줄 알고 김 씨가 지시한 대로 주가조작을 위한 허위매수 등을 계속했다.

한 직원은 검찰에서 “김 씨가 시키는 대로 하한가 매수주문을 했는데, 김 씨가 출국하고 한 달쯤 지난 후에야 그게 불법이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진술했다.

당시 옵셔널벤처스코리아에는 모두 15명 안팎의 직원이 근무했다. 김 씨 바로 아래 직책인 부장은 아내였으며, 그 아래 차장 1명, 과장 2명, 대리 4명 등이 있었다.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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