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죄인처럼 보이게 하려는 검은 음모”

  • 입력 2007년 10월 20일 03시 00분


한나라 “盧대통령 선거 개입 말라”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가 19일 국회에서 열린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선거 개입 발언을 계속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종승 기자
한나라 “盧대통령 선거 개입 말라”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가 19일 국회에서 열린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선거 개입 발언을 계속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종승 기자
법조계 “명예훼손 고소당한 회사대표도 직접 조사 드물어”

검찰, 고소인 조사땐 문재인 비서실장 대신 靑행정관 불러

한나라 “서면-방문조사도 가능한데… 정권차원 李 죽이기”

청와대가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 후보와 당직자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것과 관련해 검찰이 대선을 불과 두 달 앞두고 이 후보 등 피고소인들의 출석을 요구하는 전례가 없는 일이 벌어졌다.

한나라당은 즉각 “정치검찰의 본격적인 대선 개입이 시작됐다. 청와대가 전례 없이 야당의 대선 후보를 고소한 것도 모자라 검찰까지 ‘이명박 죽이기’에 가세했다”며 반발했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는 “검찰이 이 후보 뒷조사에 대한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고 이렇게 대선에 개입하면 특별검사제로 갈 수밖에 없다”며 정면대결을 선언했다.

▽‘통상적인 수사 절차’?=검찰은 ‘통상적인 수사 절차’라는 점을 강조했다. 명예훼손 고소 사건의 경우 먼저 고소인을 불러 고소 경위를 조사한 뒤 피고소인을 불러 진술을 듣고 반박 자료를 받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것. 고소인은 대리인 조사가 가능하지만 형사소송법 절차상 피고소인은 대리인이 조사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이 후보도 출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문재인 대통령비서실장이 사실상 노무현 대통령을 대신해 고소한 것인데도 검찰은 지난달 노 대통령이나 문 실장이 아닌 청와대 행정관을 불러 조사했다. 그런 뒤에 이 후보에 대해서는 직접 출석을 요구하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는 게 아니냐는 것. 굳이 이 후보에 대해 조사하겠다면 서면 조사 또는 자택방문 조사도 가능하다는 게 한나라당 측 주장이다.

피고소인이 소환을 거부할 경우 서면 조사를 하거나 혐의가 뚜렷한 경우에는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체포하는 방법이 있다. 피고소인 조사 없이 기소를 하는 경우도 있다.

‘안기부 X파일’ 사건 때 ‘삼성에서 떡값을 받은 의혹이 있는 검사들’의 실명을 공개한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의 경우 검찰이 6차례 이상 소환 통보했지만 노 의원이 거부하자 소환 조사 없이 불구속 기소했다.

신종대 서울중앙지검 2차장은 “(이 후보 등의) 발언의 근거나 자료 등에 대해서는 본인의 진술이나 주장이 필요하고, 그것이 (혐의 유무를) 판단하는 데 있어서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출석을) 요청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법조계 주변에선 일반적으로 이와 유사한 명예훼손 고소 사건에서 직무상 회사 대표가 고소를 당하더라도 회사 대표가 직접 조사를 받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한다.

검찰 관계자는 “이 후보도 직접 발언을 한 당사자”라며 “발언자를 특정해서 고소를 한 경우라면 피고소인을 부르는 것이 당연한 순리”라고 주장했다.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번 사건에서 피고소인에게 소환 통보도 하지 않는다면 더 큰 오해를 받을 수 있는 만큼 검찰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라며 “따지고 보면 청와대에서 야당 대선 후보를 고소한 것에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촬영:이종승 기자

▽“정권 차원의 이명박 죽이기”=한나라당은 “이런 민감한 시기에 이 후보가 마치 죄인이나 된 것처럼 검찰에 출석하는 게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검찰이 모를 리 없을 것”이라며 “이 후보에게 타격을 주기 위한 정권 차원의 검은 음모”라고 반발하고 있다.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검찰이 대선을 코앞에 두고 출석을 요구한 정치적 의도가 의심스럽다”며 “이 후보는 출석 여부를 당과 협의해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검찰의 출석 요청이 선거 중립에 위반되는 것은 물론 형평성에도 안 맞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선 ‘국가정보원과 국세청의 (이 후보에 대한) 뒷조사의 배후에 권력실세가 있다’고 한 이 후보의 발언이 명예훼손이 되는지를 가리려면 먼저 한나라당이 해당 기관의 뒷조사 사실과 그 배후를 조사해 달라고 의뢰한 사건에 대한 수사가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검찰이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통상적인 명예훼손 고소 사건과 다르게 수사를 벌여 논란이 된 적이 있는 것도 이번 사태의 배경에 의구심을 키우고 있다. 이 후보 측 ‘도곡동 땅’ 관련 고소 사건의 경우 “실체적 진실을 가려 국민이 정확한 선택을 하도록 하겠다”는 이유로 이 후보 측 고소인을 검찰에 모두 소환하는 등 강도 높은 조사를 벌여 ‘과잉 수사’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정치적 논란이 뻔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검찰이 이 후보에게 출석을 요구했다는 점에서 대선 정국에 파란을 예고하고 있다.

이종훈 기자 taylor55@donga.com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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