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自社 이기주의에 전파남용” KBS 이례적 정면비판

  • 입력 2007년 3월 21일 03시 00분


농어업정책 보고 받는 노대통령노무현 대통령이 20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농·어업 정책보고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농어업정책 보고 받는 노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이 20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농·어업 정책보고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노무현 대통령은 20일 “최근 KBS가 공공기관운영법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돼야 한다는 특집프로그램을 방영한 것은 자사(自社) 이기주의와 전파 남용의 예”라며 KBS를 강하게 비판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KBS가) 공공기관운영법의 적용 대상이 되는 것이 언론 자유 독립과 무슨 관련이 있느냐”면서 “KBS가 의원 60여 명을 통해 법 개정까지 하려 하는데 이래서는 나라꼴이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노 대통령이 KBS를 정면 비판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로 인해 지난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관련 보도 이후 불거진 KBS와 노 대통령의 갈등이 본격화하는 한편 임기 말 레임덕의 하나로 방송과 정권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노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03년 3월 KBS 창립 30주년 기념식에서 “방송이 없었으면 대통령이 될 수 있었겠는가”라고 말한 뒤 지난해까지 KBS와 ‘밀월관계’를 유지해왔다는 게 방송계 안팎의 평가다.

다음 달 1일부터 시행될 공공기관운영법은 정부 산하 공공기관이 기관장, 비상임 이사 등을 선임할 때 기획예산처 장관 산하 공공기관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치게 하고 경영관련 각종 사항을 공시하도록 하고 있다.

○ KBS 예산, 어떻게 감시하나

공공기관운영법 발효와 관련해 KBS를 둘러싼 쟁점은 1조3866억 원(2007년 기준)에 이르는 KBS 예산을 어떻게 감시해야 하느냐는 점이다. 정부 출자 기관들이 예산 편성과 결산 과정에서 정부 심사를 받는 것과 달리 KBS는 국회에서 사후 결산 심사만 받고 있다.

KBS의 ‘방만한 경영’ 문제가 고질화되면서 정부는 KBS도 공기업인 만큼 예외를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윤승용 청와대 대변인이 “KBS는 정부가 100% 출자한 공공기관이며 사실상 준조세인 수신료를 징수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방만한 경영과 도덕적 해이를 차단하는 게 정부의 의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KBS 노사는 “정부의 예산 감시를 받으면 공영 방송의 독립성을 지킬 수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등도 “예산을 통제당하면 방송이 정권에 의해 장악당한다”고 비판했다. 국회의원 61명은 16일 KBS와 EBS를 공공기관운영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을 뼈대로 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방만한 경영 감사’와 ‘방송의 독립성’ 주장을 구별하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KBS가 거의 매년 결산 때마다 ‘방만 경영’을 문제로 지적받아온 만큼 정부 측의 예산 감시 요구를 마냥 물리칠 수 없다는 것이다. 감사원도 2004년 “KBS가 예산 편성에서 외부 감독을 받지 않아 방만한 경영을 해 왔다”고 지적한 바 있다.

KBS 방만 경영의 사례는 최근에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올 2월에는 기자가 제작비 790만 원을, 지난해 말에는 여직원이 9억여 원을 횡령하는 사건이 발생했으며 최근에는 KBS 이사들의 수당을 대폭 올려 눈총을 사기도 했다.

황근 선문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공공기관운영법에 따르면 정권이 방송에 관여할 개연성도 있지만 좀 더 근본적으로는 KBS의 불투명 회계와 방만 경영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 KBS와의 갈등 본격화하나

노 대통령이 방송사에 대해 “자사 이기주의”라고 비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방송위원(3기) 임명장 수여식 때 “방송사 이기주의 또는 노조 이기주의가 중심이 돼 있는데 마땅한 통제 수단이 없다”며 방송사와 노조를 비판했다. 이는 노 대통령이 임기 후반 최대 역점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한미 FTA에 대한 KBS와 MBC의 보도에 불만을 드러낸 것이었다. 노 대통령의 발언 이전에도 김창호 국정홍보처장이 ‘KBS 스페셜’의 한미 FTA 보도에 대해 “제작자의 정치적 관점을 과도하게 반영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취임 초 “방송이 가라는 대로 갈 것”이라며 KBS에 대한 ‘무한 애정’을 과시한 바 있다. 그런 노 대통령과 방송의 밀월 관계가 이처럼 180도 바뀐 것을 두고 방송계에서는 “격세지감”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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