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배극인]‘나쁜 통계’ 쏙 뺀 청와대브리핑

  • 입력 2007년 2월 24일 03시 00분


삼성에버랜드는 1996년부터 매달 ‘실패 파티’란 행사를 연다. 검은빛이 도는 초콜릿 케이크에 초를 X자로 꽂고 직원들이 모여 실패 사례를 보고하는 행사다. 여기에서 나온 사례는 회사 내부 전산망에 올려져 모든 직원에게 소개된다. 회사 측은 “실패가 되풀이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도 외환위기 이후 여러 차례 “실패를 완전히 분석한 뒤 자산화해야 한다. 정보의 공유, 실패 사례의 기록화가 안 되니까 과거의 실패를 거듭하는 것이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일본에서는 ‘실패학’ 또는 ‘실패의 연구’란 말도 있다. 1990년대 거품경제 붕괴 후 붐이 일었지만 ‘경제가 잘나가는’ 요즘도 일본 신문이나 잡지를 보면 관련 기사가 자주 눈에 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최장 기간의 호황을 구가하고 있지만 고전을 면치 못하는 기업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특히 한 수 아래로 얕잡아보던 삼성전자 예찬에 열을 올리며 일본 기업들을 자극한다.

청와대 공식 홈페이지인 청와대브리핑은 22일 ‘각 분야 성적표 나쁘지 않았다-통계로 본 참여정부 4년’이라는 보고서를 올렸다. 2003년 2월 현 정부 출범 이후 4년간의 경제성과를 주로 평가하는 내용이었다. 청와대는 경제성장률, 대외 수출량, 외환보유액, 주가지수 등을 예로 들며 자화자찬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 가장 요란스럽게 정책을 내놓고도 뼈아픈 실패를 거듭한 부동산 분야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성장잠재력 저하나 일자리 창출 목표 실패 등 나머지 ‘나쁜 통계’도 마찬가지였다.

청와대의 설명에도 나름대로 일리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국민이 경제 문제를 현 정부의 최대 실정(失政)으로 인식하는 상황에서 이 같은 ‘절반 이하의 진실’에 공감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더 큰 문제는 ‘보고 싶지 않은 현실’이라고 실패를 외면하면 똑같은 실패가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거듭된 정책 실패의 피해자는 국민이고 나라다.

1년 후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지난 4년을 평가한다는 것은 과거에 대한 반성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지향하자는 취지일 것이다. 그것이 국정을 위임받은 정권의 국민에 대한 도리이자 의무다.

배극인 경제부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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