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X파일’ 뚜껑 열어보니…李측도“황당” 朴측도“황당”

  • 입력 2007년 2월 16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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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봉 변호사가 15일 이른바 ‘이명박 전 서울시장 검증 자료’를 보자기에 싸 들고 국회 내에 마련된 한나라당 경선준비기구인 ‘2007 국민승리위원회’ 회의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정 변호사는 이날 박근혜 전 대표의 법률특보 직을 사임했다. 이종승 기자
정인봉 변호사가 15일 이른바 ‘이명박 전 서울시장 검증 자료’를 보자기에 싸 들고 국회 내에 마련된 한나라당 경선준비기구인 ‘2007 국민승리위원회’ 회의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정 변호사는 이날 박근혜 전 대표의 법률특보 직을 사임했다. 이종승 기자
한나라당 대선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의 법률특보 정인봉 변호사가 폭로하겠다고 했던 ‘X파일’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1996년 선거법 위반 사건인 것으로 밝혀졌다.

한나라당 경선준비기구인 ‘2007 국민승리위원회’는 15일 “정 변호사가 제출한 것은 이미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내려진 사건 관련 자료여서 검증 없이 조사를 종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국민승리위는 이 자료 복사본을 이 전 시장 측에 1부 전달했으며 언론에도 공개했다.

▽“판결문과 신문 기사가 전부”=국민승리위 이사철 대변인은 이날 회의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위원 4명으로 소위원회를 구성해 자료를 검토한 결과 정 변호사가 제출한 자료의 내용은 1996년 15대 총선 당시 이 전 시장이 선거법 위반 혐의 등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판결문과 당시 신문 기사를 복사한 것이 전부였다”고 말했다.

이 전 시장은 15대 총선에 출마해 법정 한도 선거비용을 초과 지출하고 이 내용을 폭로한 비서관 김모 씨를 해외 도피시킨 혐의로 벌금형이 확정됐다.

김수한 국민승리위원장은 “모욕감을 느꼈다”고 말했고, 맹형규 부위원장은 “이미 판결이 난 선거법 위반이란 사실을 확인하고 황당했다”고 말했다.

정 변호사는 이날 A4 용지 200여 장 분량의 원본 자료와 복사본 3부를 국민승리위에 제출한 뒤 기자들에게 “(내용이 공개되면 이 전 시장이) 무척 아프실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 변호사는 이날 박 전 대표의 법률특보 직을 사퇴했다.

한편 당 윤리위원회는 이날 회의가 끝난 뒤 “20일 정 변호사를 소환해 조사한 뒤 징계 수위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정 변호사는 이날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자신의 출판기념회에서 기자들에게 “이 전 시장이 비서관을 해외 도피시켰다는 내용은 국민의 99.9%가 모른다”며 “선거법 위반 사실을 숨기기 위해 자신의 비서관에게 돈을 주고 해외로 도피시킨 사람이 어떻게 국민에게 표를 호소할 수 있느냐”고 주장했다.

그는 추가로 제출할 자료가 있느냐는 질문에 “하나 더 있는데 좀 더 추적을 해야 한다”며 “넓게 봐서 도덕성에 관한 것으로 당이 믿을 만한 구석이 있으면 자료를 제출하겠다”고 말했다.

▽정 변호사, 왜?=X파일의 실체가 공개되자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 진영 모두 황당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박 전 대표는 “내용을 떠나서 그런 식으로 공개하면 안 된다고 강하게 이야기했고 정 변호사도 ‘알았다’고 했다. 이번 일은 정말 옳지 못한 행동이었다”고 말했다고 박 전 대표와 함께 미국을 방문 중인 한선교 의원이 전했다. 한 관계자는 “이 전 시장 진영에서 우리가 조직적으로, 음모적으로 관여했다고 하는데 조직적으로 관여한 결과가 이 정도냐”면서 “음모설을 제기한 데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캠프 내부적으로는 이번 사태가 불러올 ‘부메랑’을 우려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반면 이 전 시장 측은 비난 대신 당의 화합을 강조했다. 정두언 의원은 “할 말이 없다. 이런 때일수록 당이 더 단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원 지역 방문에 나선 이 전 시장은 전화로 정 변호사의 제출 자료 내용을 보고 받았지만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고 조해진 공보특보가 전했다. 그러나 일부 측근 의원들은 “대국민 사기극” “박 전 대표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는 등 격한 감정을 쏟아내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 변호사가 이미 ‘검증’이 끝난 내용을 들고 뭔가 중요한 새로운 것이 있는 것처럼 공언한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수도권의 한 초선 의원은 “정 변호사가 박근혜 캠프 측과 상의했더라면 아마 이런 해프닝이 없었을 것”이라며 “어떻게 해서라도 이 전 시장에 대한 도덕성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생각하다가 결국 말도 안 되는 무리수를 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상록 기자 myzodan@donga.com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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