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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2월 14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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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비판 염려하는 미국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은 13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북핵 6자회담 합의는 매우 포괄적인 것으로서 진정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첫걸음”이라며 “미국 등 주변국들은 (북한에 대한) 인센티브와 디스인센티브를 모두 갖고 있다”고 말했다.
라이스 장관은 “이번 합의는 ‘좋은 시작’이지만 이야기의 끝은 아니다”라고 전제한 뒤 “북한이 핵 시설 불능화에 동의했다는 것은 그들이 실제로 핵 프로그램을 폐기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전략적 선택을 했다는 신호”라며 이같이 말했다.
또 토니 스노 백악관 대변인은 논평에서 “이번 합의는 한반도의 비핵화를 향한 매우 중요한 첫 조치”라며 “하지만 북한이 합의사항들을 준수하지 않으면 그들이 원하는 혜택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스노 대변인은 “합의에 도달하는 데 한국과 중국의 노력이 중요했다”고 강조하면서 “이번 합의로 유엔의 경제제재가 해제되는 것은 아니며 국제사회를 통한 제재 등 레버리지(지렛대)도 여전히 남아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번 회담 합의에 대해 미국 내 전문가들은 “일정한 진전”이라고 평가하면서도 “핵무기와 핵물질의 폐기라는 진짜 목표로 이어질지는 미지수이며 국제사회의 공조체제가 흔들려선 안 된다”는 다소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미국 내 최고의 핵 전문가로 꼽히는 시그프리트 헤커 로스앨러모스국립연구소 명예소장은 13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최종 합의문을 보지 못해 단정할 수 없지만 상당한 진전으로 평가한다”면서도 “오랜 시간이 걸릴 여정에 접어든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본질적인 핵 폐기와 무관한 이번 합의로 인해 유엔 제재 및 한국 정부의 인도적 지원 중단 등으로 형성된 국제 공조가 흔들려 북한에 대한 레버리지를 잃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민주당으로부터는 “서툰 외교로 북한이 핵무기만 갖게 만들었다”는 비판을, 보수파로부터는 결정적 순간에 약한 모습을 보였다는 비판을 받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부시 행정부가 이제까지 비판해 온 1994년 제네바합의로 되돌아갔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고 전했다.
네오콘(신보수주의)인 존 볼턴 전 유엔 주재 대사는 CNN 방송에 출연해 “부시 대통령이 추구해 온 정책의 근본적 원칙에 배치되는 합의로서 나쁜 선례를 남길 수 있다”며 “부시 대통령은 합의 내용을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속앓이 하는 일본
‘명분상은 환영, 속내는 떨떠름.’
13일 중국 베이징 6자회담 타결로 관련 국가 중 가장 곤란한 처지에 빠진 것은 일본이다. 그간 ‘납치 문제 진전 없이는 북한에 대한 지원은 없다’고 누차 강조해 왔기 때문이다. 일본은 이번 합의서에도 ‘지원 규모’는 넣지 말자고 했으나 막판에 다른 국가들과 보조를 맞출 수밖에 없었다.
일본 언론은 이날 일본이 적어도 초기 단계의 보상 조치에는 참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이날 북한 핵 포기를 위한 작업에 대해 ‘협력은 하지만 지원은 안 한다’는 방침을 누차 강조했다.
그는 이날 저녁 총리관저에서 기자들에게 “합의에 이른 것은 잘된 일”이라고 평가한 뒤 “그러나 일본은 납치 문제가 있어서 에너지 지원이나 원조는 어렵다. 이는 북한을 제외한 모든 6자회담 참가국이 이해해 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는 북한의 에너지 실태 조사 등 간접적인 분야에서는 협력할 것임을 밝혔다.
6자회담 일본 측 수석대표인 사사에 겐이치로(佐佐江賢一郞)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도 이날 베이징에서 기자들에게 지원 보상 5개국 균등분담론에 대해 “우리는 우리 원칙을 유지하고 관철한다”고 말했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일본 외상도 이날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과의 통화에서 “일본은 핵 이외에 납치 문제도 있으므로 계속해서 협력하기를 바란다”고 요청했다고 일본 언론은 전했다.
그렇다고 일본을 제외한 5개국이 모두 방침을 정리한 북핵 문제 해결에 마냥 어깃장을 놓을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이와 관련해 일본 정부는 합의서에 담긴 5개 워킹그룹에 ‘북-일 국교정상화 그룹’이 포함된 것에 기대를 걸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이날 밤 “30일 이내에 납치 문제를 포함한 북-일 국교정상화 워킹그룹이 개최된다는 것은 하나의 진전”이라며 “워킹그룹을 통해 납치 문제 해결로 나아가도록 전력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는 지금도 살아 있고 일본의 제재 조치는 변함이 없다”고 말해 일본이 독자적인 경제제재를 계속할 의향임을 밝혔다.
NHK는 “북한은 자국에 대규모 지원을 할 수 있는 곳은 일본밖에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고 이런 점에서 북-일 국교정상화가 중요하다”며 “앞으로 오랜 인내와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일부 방송에서는 이번 합의서 채택으로 일본의 상황이 난처해진 것을 두고 “미국이 일본을 배신했다”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의무이행에 전력 다할것” 中언론 이례적 신속 보도
6자회담 주최국인 중국은 한때 무용론까지 제기된 6자회담에서 처음으로 북핵 폐기를 향한 첫 합의문이 나오자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탕자쉬안(唐家璇) 국무위원은 이날 공동선언문이 발표된 직후 6개국 대표단장을 접견한 자리에서 “중국 정부는 이번에 합의한 6자회담 공동문건을 결연히 지지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탕 국무위원은 “중국은 의무 이행을 위해 전력을 다할 것”이라며 “이번 회의 과정과 결과는 6자회담이 (북핵 문제를)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고 강조했다.
신화통신 등 중국 언론은 폐막식이 끝나기도 전에 ‘6자회담 공동문건 합의’를 보도하는 등 이례적으로 발 빠른 태도를 보였다.
중국 정부와 언론의 긍정적인 평가와 달리 전문가들은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중국 공산당 중앙당교의 장롄구이(張璉괴) 교수는 “이번 회담은 성공과 실패의 양면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핵 해결을 위한 이행 합의문을 이끌어내고 시한을 설정했으며 차기 회담 날짜를 못 박은 것은 긍정적이나 합의 수준이 북한의 핵 폐기가 아닌 ‘동결’ 수준에 머무른 점, 기존 핵무기 처리에 관한 언급이 없는 점은 아쉽다”고 말했다.
베이징=하종대 특파원 orionha@donga.com
■러, 환영속 지원규모 촉각 “각국 이해관계따라 부담을”
러시아 정부는 6자회담에서 러시아의 역할이 증대된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북한 핵 시설 폐쇄 및 봉인에 따른 러시아의 부담과 상응 조치에 촉각을 세웠다.
러시아 외교부는 이날 성명을 내고 “북한이 재처리 시설을 포함한 영변 핵 시설을 폐쇄, 봉인하고 감시 및 검증 활동 수행을 위해 국제원자력기구(IAEA) 요원을 복귀하도록 했다는 점이 이번 회담의 가장 중요한 성과”라고 평가했다.
익명을 요구한 러시아 외교부 관계자는 “합의서에 실무그룹 구성과 장관급 회담 개최가 들어가 러시아의 중재자 역할이 반영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모스크바 외교 소식통은 “합의서는 각 국의 부담 몫에 대해 ‘평등과 형평의 원칙’을 강조했다”며 “각국의 부담은 이해관계 순서에 비례해야 한다는 것이 러시아 정부의 시각”이라고 말했다.
한편 리아노보스티 등 일부 언론은 이번 회담 과정에서 러시아 정부가 북한이 러시아에 진 빚 8억 달러를 인도적 차원에서 탕감해 주는 방안을 검토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러시아 정부는 이를 6자회담과 별도로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모스크바=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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