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상돈]‘햇볕’이 북핵을 초래했다면

  • 입력 2007년 1월 12일 03시 00분


코멘트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에서 유엔 주재 미국 대사를 지낸 진 커크패트릭은 “진보 좌파는 항상 미국을 먼저 비난한다”는 말을 남겼다. 동서 냉전, 중남미의 공산정권 출현, 이란 사태에서 미국의 적을 비난하기보다는 미국의 잘못이 더 크다는 식의 논리를 펴는 진보세력에 대한 일침이었다. 북한의 핵이 한국을 겨냥하는 것은 아니라는 노무현 대통령, 북한이 빈곤 때문에 핵을 개발하게 됐다는 이재정 통일부 장관, 대북 지원이 북핵을 초래한 것은 아니라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의 발언은 커크패트릭의 명구를 떠올리게 한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으로 인해 북한이 핵실험에 성공했다는 사실은 아침이 오면 해가 뜬다는 사실만큼 분명하다. 탈북자 증언을 종합해 보더라도 명백하다. 국내외 중요 신문의 사설도 그런 점을 지적했다. 대북 지원이 북한의 핵 개발과 군사력 증강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 정부기관의 보고서도 있다. 현 단계에서는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통해 북한이 핵을 폐기하도록 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또 하나 있으니, 햇볕정책과 북핵의 연관성을 규명하는 작업이다.

알고도 대북지원 하는건 이적행위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대북 지원을 주도한 사람들이 북한에 대한 ‘퍼 주기’가 핵 개발로 이어질 것을 전혀 몰랐다면 정보력과 판단력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정책은 때로는 실패할 수 있기에, 실패한 정책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북한에 전달하는 식량과 현금이 핵 개발로 이어질 것을 알면서 대북 ‘퍼 주기’를 계속했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이적 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형법 제99조는 대한민국의 군사적 이익을 해하거나 적국에 군사적 이익을 공여하는 행위를 일반이적죄로 규정한다. 외환죄의 하나인 일반이적죄는 심각한 범죄이다. 이론적으로는 임기 중 대통령도 이를 이유로 소추할 수 있다. 북한이 핵무장을 하면 한국의 재래식 군사력은 전쟁 억지력을 상실하니까 북핵 때문에 대한민국의 군사적 이익이 심각하게 훼손됐음은 명백하다. 대북 지원이 핵 개발을 조장함을 정책 결정자가 알고 있었는지가 관건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소련이 예상보다 빨리 원자폭탄을 갖게 된 데는 미국의 로스앨러모스 핵 연구소에 근무하던 몇몇 사람의 이적 행위가 적잖은 역할을 했다. 핵 기술을 소련에 유출한 클라우스 푹스와 로젠버그 부부 등은 결국 단죄됐다. 로젠버그 부부는 처형됐다. 사형을 선고한 어빙 카우프먼 판사는 “당신들 때문에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 수백만 명이 죽어 가고 있다”고 판결문에 썼다. 좌파는 이들이 냉전의 희생양이라고 둘러댔지만, 1990년대 들어 공개된 미 정보 당국의 극비 문서는 이들이 간첩이었음을 확인해 주었다. 로젠버그 부부의 반역에 힘입어 핵무장을 한 소련은 북한이 남침을 감행해 6·25전쟁을 일으키게 했으니, 당시 연방수사국(FBI) 에드거 후버 국장의 말대로 이들은 ‘세기의 간첩’이었다.

정상적인 국가는 적에 동조하거나 적을 이롭게 하는 행위를 단호하게 처벌한다. 1980년대 말 미국 정부는 잠수함 프로펠러의 소음을 줄일 수 있는 기술을 소련에 유출한 일본의 도시바 회사를 강력하게 응징했다. 1998년 이스라엘 법원은 화학무기 제조에 쓰이는 물질을 이란에 판매한 사업가에게 반역죄를 적용해서 징역 16년형을 선고했다. 지난해 말 미국의 연방대배심은 이슬람으로 개종한 뒤 알 카에다에 가담한 미국 젊은이를 반역죄로 결석 기소했다.

‘민족’ 내세워 옹호만 해선 안돼

한국 사회에선 이런 단호함을 찾아볼 수 없다. 국민의 세금이 평양으로 흘러들어 북한이 핵을 개발했다면 국정조사권을 발동하고, 특별검사를 임명해서 수사해야 한다. 언제부터인지 우리 사회에선 ‘반역’을 단죄하기는커녕 ‘민족’이란 허울 좋은 명분을 앞세우고 옹호하는 일이 일상화됐다. 문제에 책임이 있는 정부야 그렇다 치더라도, 명색이 야당이라는 한나라당마저 북핵에 대해 손을 놓고 있으니 한심하다. 대통령 후보가 되어 노 정권을 심판하겠다는 사람이라면 북핵 개발의 진상을 가려내 잘못된 정책을 밀고 나간 책임자를 처벌하겠다고 빈말이라도 해야 할 것이다.

이상돈 중앙대 교수·법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