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1년 얼마나 더 놀라야 할지

  • 입력 2006년 12월 23일 02시 56분


“내년이 걱정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21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회에서 1시간 10분 동안 쏟아낸 ‘격정 발언’이 송년 정국을 뒤흔들면서 대통령의 1년여 잔여 임기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노 대통령이 주먹을 쥐고 연단을 내리치는 등 격한 모습으로 “거들먹거린다” “욕만 바가지로 먹었다” “미국 바짓가랑이에 매달려…” 등의 막말을 하는 모습을 TV에서 본 많은 시민은 “저러다 정말 일 나는 것 아닌가” 하며 당혹스러워 했다.

회사원 박상훈(40) 씨는 “섬뜩하다”고 했고, 택시운전사 강모(52) 씨는 “대통령은 공개 석상에선 준비된 원고만 읽었으면 좋겠다. 대중 유세도 아니고…”라고 말했다.

누리꾼들도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동아닷컴의 노 대통령 발언 기사에는 “군대 안 가기 운동을 하자. 뭐 하러 군대에서 썩고 있느냐” 등의 비난 댓글이 쇄도했다. 노 대통령이 “군대 가서 몇 년씩 썩지 말고…”라고 발언한 데 대한 반응이었다.

정치권은 “터질 때는 터지더라도 다르게 할 것은 다르게 하겠다”는 노 대통령의 언급에 주목하며 긴장했다.

한나라당의 한 중진의원은 “노 대통령의 발언에서 분노와 울분이 느껴진다”고 걱정했다.

또 다른 의원은 “비판 여론에 아랑곳하지 않고 정치에 관여하고 자기 방식대로 국정을 밀어붙이겠다는 것 아니냐”며 “대통령이 대선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할 경우 모두가 불행해진다”고 말했다.

군 장성 출신들의 모임인 성우회 회장단은 이날 서울 잠실 향군회관에서 만나 “별들 달고 거들먹거렸다”는 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유감을 표시하고 해명을 요구했다. 김성태 성우회장은 “(노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착잡한 마음으로 잠을 못 잤다”고 말했다.

한 예비역 장성은 “대통령이 국가 안전과 국민 생명을 지킬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라며 노 대통령의 안이한 안보 인식을 우려했다.

현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를 지낸 고건 전 총리는 ‘고건 총리 기용은 인사 실패’라는 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자가당착이며 자기부정”이라고 강하게 반박했다.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어수영 명예교수는 “에이브러햄 링컨을 존경한다는 노 대통령이 링컨이 말한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치’와 역행하는 통치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세대 경제학과 김정식 교수는 “1시간 10분간 얘기하며 경제 현안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은 것은 심각한 징후다.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안정적 경제 운영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한 정치학자는 “대통령 단임제에서는 임기 말 대통령의 힘이 빠지기 마련”이라면서 “노 대통령이 이런 한계를 인정하고 민생 경제 회복과 국민 통합에 신경 쓰며 조용히 국정을 마무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친노 성향의 열린우리당 이화영 의원은 “노 대통령이 정치 현안에 대해 계속 언급할 뿐 아니라 영향을 미치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파문이 확산되자 대통령홍보수석실은 “우리 사회의 보수와 진보 간 대화와 통합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토로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고 해명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고 전 총리를 비판하거나 깎아내린 일이 없다”며 고 전 총리의 성명에 유감을 표명했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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