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심회 지령 및 보고 내용

  • 입력 2006년 12월 8일 19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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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9월 중순 어느 날 일심회 총책 장민호(44) 씨는 경기 고양시 일산 자택 근처의 PC방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뭔가 작업을 하는 데에 몰두했다. 휴대용 저장장치인 USB를 컴퓨터에 접속한 장 씨는 해외의 서버를 둔 e메일 계정을 열어 북측에서 보내온 지령문을 확인했다.

지령의 내용은 민주노동당과 시민단체의 반미투쟁을 더욱 활성화하라는 내용. 물론 은어로 표현돼 있어 일반인은 알아볼 수 없는 내용이었다.

이처럼 북한은 인터넷을 통해 일심회에 지령을 내려 국내 정치에 관여하고 반미(反美) 운동을 확산시키려 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부응해 일심회 회원들은 국내 정세와 시민운동 동향, 주한미군 재배치 현황 등을 상세하게 북한에 보고해 왔다는 게 공안당국의 설명이다.

●반미운동 확산, 정치개입 시도

북한 대외연락부는 일심회에 인터넷을 통해 12건, 북한 공작원 접촉을 통해 10여 건 등 20여 건의 지령을 내렸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부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 참석을 한 달 앞둔 지난해 10월에는 "부시가 방한하는 것에 때 맞춰 광범위한 대중단체들과 군중을 동원해 대규모 반미투쟁을 벌여야 한다"고 지시했다.

검찰은 "북한의 지령에 따라 일심회는 평택 미군기지 이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의정부 여중생 사망사건 등을 이용한 반미활동에 직·간접적으로 개입을 시도했다"고 밝혔다.

북한이 국내 정치에 직접 개입하려 한 것도 드러났다. 지난해 11월에는 '민노당을 확대 강화하고 대중적 혁명역량을 마련하기 위한 사업을 밀고 나가라'고 지시했다. 이어 다음 달에는 민노당 지도부 개편과 관련해 '○○○만한 인물이 없으므로 그를 당 대표로 선출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적당하다고 본다'며 특정 인물에 대한 지지를 요구했다.

성과가 부진한 것을 질책하는 듯한 지령도 있었다. 올 9월 전달된 지령은 "경기가 좋지 않은데 민노당과 시민단체의 반미투쟁을 늘리도록 힘쓰라"고 주문했다.

●정치권·시민운동 동향 보고

일심회 회원들은 각자 영역을 나눠 정보를 수집해 모은 뒤 이를 북한에 보고했다. 손정목·최기영 씨는 민노당 중앙당, 이정훈 씨는 민노당 서울지역, 이진강 씨는 시민단체 동향을 중심으로 정보를 수집했고 장 씨가 이를 모아 북한에 보냈다.

검찰이 8일 기소한 북한 보고 문건은 30여 건.

국내 정세에 대해서는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 당시 국내 정치권과 여론의 동향과 같은 해 4·15 총선 관련 동향이 북한에 보고됐다. 올 10월 민노당의 방북에 맞춰 대표단 13명 및 주요 당직자 344명의 상세한 성향을 분석한 자료가 보고되기도 했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동향도 간간히 보고됐지만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정리한 수준"이라고 검찰은 밝혔다.

한미 FTA 저지, 평택 미군기지 이전, 미군기지 환경오염 관련 투쟁 동향, 주한미군 재배치 현황 등 반미운동과 관련된 시민운동 동향도 북한에 보고된 주요 내용이었다. 민중연대, 통일연대 등 반미 성향의 시민단체의 움직임도 보고 대상에 포함됐다.

이 문건들 가운데 상당수는 국가보안법상의 '국가기밀'에 해당한다고 검찰은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고 북한에 전달됨으로써 북측에 실질적으로 이익이 되는 정보는 국가기밀"이라며 "대법원 판례를 기준으로 보고문건을 하나 하나 살펴 국가기밀에 해당하는지를 가렸다"고 설명했다.

장택동기자 will7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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