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우 칼럼]核을 머리에 이고 살 수는 없다

  • 입력 2006년 11월 4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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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이 한반도 비핵화(非核化)에 합의하고 두 달이 지난 1992년 2월, 북의 김일성은 남북 고위급회담 대표단과 가진 오찬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에게는 핵무기가 없는 것은 물론 그것을 만들지도 않고 만들 필요도 없다. 우리는 주변의 큰 나라들과 핵 대결을 할 생각이 없으며 더욱이 동족을 말살시킬 수 있는 핵무기를 개발한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거짓말이었다. 북은 이미 본격적으로 핵무기 개발에 나서고 있었고, 1년 뒤인 1993년 3월에는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했다. 1차 북핵 위기였다. 1994년 10월 북-미 간에 제네바 합의가 이루어졌으나 북이 핵개발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미국이 그런 북을 믿을 리 없었다. 제네바 합의는 휴지조각이 돼 버렸다.

북은 2002년 10월 고농축우라늄에 의한 핵개발 의혹을 시인했다. 2차 북핵 위기였다. 그러나 북을 ‘악의 축(軸)’으로 규정한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워싱턴은 평양의 ‘의도된 베팅’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평양은 2001년 9·11테러가 ‘텍사스 카우보이’ 부시 대통령의 선악(善惡) 인식과 세계 전략에 미친 영향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왕따’된 북핵 외교

평양은 ‘베팅’을 키웠다. 2003년 1월 다시 NPT 탈퇴 선언을 하고, 2005년 2월에는 핵 보유를 선언했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는 여전히 ‘직접 거래’에 응하지 않았다. 평양은 2006년 7월 5일 미사일 발사에 이어 10월 9일 핵실험을 강행했다.

포용론자들은 그러니 미국 탓이 아니냐고 한다. 부시 행정부가 북-미 양자(兩者) 회담을 거부하고 압박 일변도로 북을 몰아붙인 결과 평양정권이 핵실험까지 하게 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북핵의 본질을 외면하는 ‘외눈의 시각’일 뿐이다.

전성훈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의 핵정책을 명료하게 정리한다. “북한의 핵정책은 한반도의 비핵지대화를 슬로건으로 내건 선전용 대외정책과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가장해 비밀리에 핵무기를 개발하는 군사정책으로 이원화되어 추진돼 왔다”는 것이다.

북핵의 본질은 핵무기로 수령체제를 보위(保衛)하자는 것이다. 1991년의 비핵화 합의는 당시 구(舊)소련의 붕괴와 동유럽 공산정권의 몰락으로 위기에 빠진 김일성이 체제의 활로를 남한의 협조에서 구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그것을 그의 후계자인 김정일이 받아 2000년 DJ와 남북 정상회담으로 이어가고, DJ와 노무현 정부는 햇볕과 포용으로 ‘민족끼리’를 합창한 셈이다.

그 결과는 김일성이 말한 대로 ‘동족을 말살시킬 수 있는 핵무기’ 개발로 드러났다. 그렇다면 햇볕과 포용이 실패한 것을 어떤 궤변(詭辯)으로 부정할 수 있단 말인가. 실패가 명백해졌다면 그것을 버릴 전략적 결단이 있어야 한다. ‘핵 폐기 없으면 포용 없다’는 원칙마저 없다면 문제 해결의 주도적 역할은커녕 고립을 자초할 수밖에 없다. 나흘 전 중국 미국 북한이 6자회담 재개(再開)에 합의하는 과정에서 한국이 ‘왕따’가 된 것은 동맹국인 미국은 물론 끝내 포용해 주겠다는 북에서조차 불신당하고, 무시당하는 참담한 현실을 입증한다.

북이 6자회담 테이블로 돌아온다고 해서 핵 위기가 풀린다는 보장은 없다. 평양은 과거에 그래 왔듯이 이번에도 6자회담을 시간벌기용으로 악용하려 들지 모른다. 두려운 것은 그렇게 시간을 끄는 사이 북한의 핵무기 보유가 기정사실화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미국과 일본 및 국제사회가 아무리 북한에 대해 핵보유국 인정을 하지 않겠다고 한들 폐기하지 않은 핵이 저절로 사라질 수는 없는 일이다. 중국을 의식하는 한 미국의 ‘강력한 대응’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핵무기 수출이나 핵물질 이전을 막는 수준으로 봉합된다면 북은 사실상 핵보유국이 된다.

누가 위협을 과장한다는 건가

그렇게 된다면 4800만 대한민국 국민은 핵을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도 자주를 외치고 평화를 말할 수 있겠는가. 안보 위협을 과장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건 과장이 아니다. 엄연한 현실이다. 어떤 가치도 ‘핵을 머리에 이고 살 수는 없다’ 위에 둘 수는 없다.

전진우 大記者 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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