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남원상]추석TV ‘폭력 특집’에 가려진 ‘북핵’

  • 입력 2006년 10월 9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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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피 흘리는 여성 코미디언’(내 주먹이 운다·MBC) ‘욕설이 난무하는 조폭 영화’(투사부일체·SBS) ‘서해대교 교통사고 현장의 우려먹기’(추석특집 VJ 특공대·KBS2).

KBS 등 지상파 방송사들이 시청자에게 보낸 올해의 ‘추석 특집 선물’은 눈살 찌푸려지는 장면투성이였다. 명절날 가족 시청 시간대를 아랑곳하지 않은 듯 욕설이나 선정적 화면도 여과 없이 나왔다.

MBC ‘내 주먹이 운다’(5일)는 연예인과 아나운서의 복싱 경기에서 난타전이나 다름없는 가학적 장면을 내보냈다. 서로 주먹을 마구 휘두르는 바람에 여성 출연자들이 실신하거나 코피가 터지기도 했다.

‘가문의 위기’(5일) ‘투사부일체’(7일·이상 SBS) ‘싸움의 기술’(6일·MBC) 등 ‘조폭 영화’에서는 육두문자나 잔혹한 장면이 걸러지지 않았다. ‘투사부일체’에서는 ‘이 ××× ×아’라는 욕이 그대로 방영됐고, ‘싸움의 기술’에서는 맨손으로 칼날을 잡아 피가 철철 흐르는 장면이 나왔다.

특히 KBS2 추석특집 ‘VJ 특공대’(6일)는 ‘서해대교 교통사고 현장’을 다루면서 유가족이 오열하거나 아버지의 시신을 찾는 자식의 모습을 뒤쫓아 가며 소개해 “남의 불행이 방송인에겐 행복인가”(김진영)라는 시청자의 따끔한 지적을 받기도 했다.

KBS의 ‘서해대교 사고’에 대한 집착은 뉴스 보도에서도 드러났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겠다고 ‘폭탄선언’을 한 3일, ‘KBS 뉴스9’의 첫 소식은 서해대교 사고 현장이었다.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은 8일 ‘공영방송 눈에는 국가의 명운을 가를 북핵이 안 보이는가’라는 성명을 내고 “사고 소식도 물론 중요하지만 국가와 국민에게 미치는 심각성과 파장의 충격으로 볼 때 ‘북핵’보다 더 중요한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KBS는 5, 6일에도 추석 스케치를 북핵에 앞서 방영해 사태의 심각성을 전하지 않았고 MBC 뉴스도 5일 ‘북핵’을 별로 중요하지 않은 소식으로 취급해 ‘한심한 인식’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올해 추석엔 연휴가 길어 시청자들의 기대가 모아졌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지상파들은 예년과 마찬가지로 품질 경쟁보다 선정적인 소재에 기울었고, 그 와중에 방송 매체로서의 책임은 외면당했다.

남원상 문화부 surre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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