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도발할 때마다 日 한발짝씩 ‘우향우’

  • 입력 2006년 7월 12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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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를 계기로 일본의 정부 당국자들이 공공연하게 ‘적(敵) 기지에 대한 공격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선제공격론’을 거론해 주변국의 반발을 사고 있다.

발언자들이 누카가 후쿠시로(額賀福志郞) 방위청장관과 아소 다로(麻生太郞) 외상, 아베 신조(安倍晋三) 관방장관 등 핵심 각료들이라는 점에서 파문은 결코 작지 않다.

공론화에 불을 지핀 것은 9일 누카가 장관. 이어 두 사람도 “자위대가 미사일 발사기지를 공격하는 것은 헌법의 자위권 범위 안에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잇달아 내놓았다.

이 같은 분위기의 배경에는 일본이 미국과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는 미사일방어(MD) 체제만으로 일본을 지킬 수 있느냐는 불안감이 깔려 있다.

하지만 외부로부터의 위협을 과장해 군사대국으로 치달으려는 일본의 우경화 움직임이 더 본질적인 동기라는 분석도 적지 않다. 헌법을 개정하고 자위대의 해외 파병 요건을 완화하려는 일본 정부와 여당의 최근 동향이 이를 뒷받침한다는 것.

적 기지 선제공격론은 1950년대부터 끊임없이 논란이 돼 왔다.

하토야마 이치로(鳩山一郞) 전 총리는 1956년 당시 방위청장관이 대독한 국회 답변에서 “국토가 유도탄 등으로 공격당하면 앉아서 자멸을 기다리는 것이 헌법 취지라고 보지는 않는다”며 “공격을 방어하는 데 다른 수단이 없다고 인정되는 때에 한해 적의 기지를 공격하는 것은 법리적으로 자위의 범위에 포함되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밝혔다.

아베 관방장관이 10일 “정부의 기존 견해”라며 소개한 것도 하토야마 전 총리의 이 답변이었다.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한 2003년 1월에는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당시 방위청장관이 중의원 안전보장위에서 “적에게 일본을 공격하겠다는 의사표시와 준비행동이 있으면 공격할 수 있다”며 미국에서 장거리 순항 미사일 ‘토마호크’를 도입할 것을 주장했었다.

이 때문에 일본 정부의 선제공격능력 보유 주장이 1차적으로 미국으로부터 토마호크 미사일을 대량 구입하기 위한 수순 밟기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선제공격론이 아직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은 아니다. 누카가 장관은 선제공격론을 제기하는 자리에서도 “자민당과 여당 내에서의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해 사견임을 명확히 했다.

실제로 일본이 적 기지 공격 능력을 갖추려면 거쳐야 할 장애물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우선 자민당의 연정 파트너인 공명당은 평화주의를 당론으로 하고 있어 선제공격론에 반대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민주당 대표 등 일본 야당들도 선제공격론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나아가 평화헌법을 개정하지 않고 선제공격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적지 않을 것이다. 국제사회의 반발 또한 무시 못할 요소다.

이와 관련해 토니 스노 미국 백악관 대변인은 10일 “아베 장관의 발언은 헌법 개정을 해야 한다는 뜻으로 헌법을 뛰어넘어 대응하겠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해석했다.

사실 일본의 재무장과 군비 확장 움직임은 역사가 오래된 것이며 미국과 이해관계가 일치하고 있다. 이번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이러한 흐름에 좋은 빌미를 제공했다.

또 북한 미사일에 대해 민족 공조 쪽으로 치우치는 듯한 한국 정부의 대응이나 중국의 반응도 동아시아에서의 일본의 고립감을 증폭시켜 재무장과 군비 증강으로의 독주를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對日강경’강조… 자칫‘근본문제’ 흐릴수도

“일본의 태도는 동북아시아의 평화에 심상치 않은 사태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물러서려야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다.”

11일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지도부 및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소속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만찬 간담회는 일본 정치지도자들의 대북 선제공격 발언 등에 대한 노 대통령의 단호한 방침을 재확인하는 자리였다. 노 대통령은 일본에 대한 정부 대응에 관해 당의 동의를 이끌어내려 한 듯하다. 하지만 당측 참석자들은 일본 강경파의 선제공격론에 대한 정부의 문제 제기에 대해서는 ‘적절했다’고 평가하면서도 한미 공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 북한에도 정부의 단호한 방침을 전달해 줄 것을 주문했다.

이날 당측 참석자는 14명이었지만 발언을 한 사람은 5명이었다. 다음은 발언 내용 요약.

▽김근태 의장=“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분명 잘못된 것이고 도발에 대해 합당한 책임을 요구해야 한다. 일본 강경파에 대한 문제 제기는 적절했다고 본다. 묵과할 수 없는 발언이다. 관방장관의 선제공격 발언은 우리의 안전을 저해하는 것이다.”

▽김원웅 의원=“일본이 무력 사용 발언을 했다는 것이 즉각 사용은 아니지만 가능성을 열어 주는 자체가 위험한 것이다. 일본이 그동안 재무장, 군비 확장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는 것을 볼 때 이 기회에 속내를 드러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장영달 의원=“상황이 어렵더라도 미국과 한목소리로 나가야 한다. 일본에 대한 대응은 적절했다고 본다. 국제사회와 공조해 나가는 큰 틀은 유지해야 하지만 상황의 복잡성을 막기 위해서라도 일본에 대해서도 지적할 것은 지적해야 한다. 큰 틀에서 미국과 한목소리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강봉균 의원=“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매우 불합리한 선택으로 군부 강경파의 도발이 아닌가 한다. 북에 대해서는 단호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 일본이 이 기회에 지나치게 동북아 평화를 위협하는 행위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국민은 미국과 공조를 튼튼히 해야 안심한다.”

▽정의용 의원=“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안보 상황은 아니지만 잠재적 위협 요인임은 부인할 수 없다. 일본 장관의 발언도 도발적 행위이며 이 발언 또한 우리의 잠재적 위협 요인이다. 북한과 일본에 대해서 단호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또한 한미 공조에서는 양국 정상 간의 긴밀한 관계가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며 9월 한미정상회담은 매우 적절한 것이다.”

▽노 대통령=“취임할 때 북핵 문제를 안고 시작했는데 당시에도 한반도 무력 사용이라는 옵션을 배제하기 위해 취임 전부터 노력해 왔다. 최근 일본의 대응이 무력 옵션을 배제해 온 노력을 무력화할 가능성이 있어서 우려스럽다. 한미 간에는 다른 의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조정하면서 관리해 나가고 있다.”

이날 만찬에 참석했던 한 의원은 본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일본 극우주의자들의 선제공격 운운에 대해 강경 대응한 것은 원론적인 측면에서는 맞지만 자칫 북한 미사일이란 근본적 문제를 흐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노 대통령은 만찬이 끝난 뒤 “오늘 의원님들과 대화를 나눠 보니 인식 공유 폭이 넓고 유익했다”고 했지만 사실상 당청(黨靑) 간 인식의 차이가 드러난 자리였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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