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헌금 파문]朴대표 정면돌파 승부수

  • 입력 2006년 4월 14일 03시 00분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대표는 13일 긴급 소집된 의원총회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시종일관 굳은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했을 뿐이다. 한솥밥을 먹어 온 동료 의원의 비리 혐의를 스스로 공개하고, 검찰에 수사의뢰하는 결단을 내리기가 결코 쉽지 않았던 듯하다.

더구나 김덕룡(金德龍) 의원은 최고위원과 원내대표를 지낸 5선 중진이고, 재선의 박성범 (朴成範) 의원은 서울시당위원장이라는 핵심 당직을 맡고 있다. 두 사람의 ‘손실’은 5·31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한나라당에는 치명상이 될 수도 있다.

한 측근은 “일방적인 제보만으로 섣불리 조치하지 않는 박 대표가 이번 사건은 100% 확실하다는 보고를 받고 (결단하기까지)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고 전했다.

박 대표가 이번 사건을 상세하게 보고받은 것은 이달 초 당 클린공천감찰단에 김 의원 관련 공천비리 제보가 들어온 뒤다.

김재원(金在原) 감찰단장은 지난달 이미 제보가 접수돼 진상조사가 진행되고 있던 박 의원 건과 함께 이를 보고했고, 박 대표는 “진상을 소상히 파악하라”고 지시했다.

조사가 이어지던 중 박 의원에게 돈을 건넸다고 주장하는 성낙합(成樂合) 전 서울 중구청장의 인척 장모 씨가 “성 전 구청장 부인의 무소속 출마를 지원해 주면 사건을 덮겠다”는 제안을 했다. 또 서울 서초구청장 후보 공천을 받기 위해 김 의원에게 돈을 건넨 한모 씨는 12일 “공천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으면 내일(13일) 사건을 폭로하겠다”고 압박했다.

이를 보고받은 박 대표는 “정도(正道)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며 같은 날 오후 4시경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소집했다. 침통한 분위기 속에 “검찰 수사의뢰까지 하는 건 심한 것 아니냐”는 동정론이 일부 나왔지만 “위기 상황에서 미적거리는 전례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박 대표의 의지가 강했다. 이재오(李在五) 원내대표 등도 엄정 대처를 강조하는 등 원칙론이 대세를 이뤘다.

치명적인 치부를 스스로 공개하는 결단을 내린 데 대해 당 안팎에서는 박 대표가 향후 대선가도까지 염두에 두고 정치생명을 건 승부수를 던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읍참마속(泣斬馬謖)이란 얘기도 있다. 한편에서는 파장이 더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한 고육책(苦肉策)이었다는 냉소적 시각도 없지 않지만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이다.

진영(陳永) 의원 등 상당수 초선의원은 “지도부의 결단으로 당이 공천비리라는 고질병을 도려내고 다시 태어나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재선 의원은 “검은돈이 과거처럼 보호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하고 의원들이 공포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고 있다”며 “학습효과가 생기면 앞으로 정치문화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열린우리당 측은 “반국가적 범죄인 한나라당의 매관매직 실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며 총공세를 폈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도 논평을 내고 “공천이란 이름으로 자행된 관직장사 구태에 대해 검찰이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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