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적십자 회담, 北, 6·25이후 납북자 존재 첫 인정

  • 입력 2006년 2월 24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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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북한 강원 온정리 금강산호텔에서 막을 내린 제7차 남북적십자회담에서 남측 수석대표인 장석준 대한적십자사 사무총장(왼쪽)과 북측 대표단장인 최성익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7개항의 합의서에 서명 교환한 뒤 악수를 하고 있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23일 북한 강원 온정리 금강산호텔에서 막을 내린 제7차 남북적십자회담에서 남측 수석대표인 장석준 대한적십자사 사무총장(왼쪽)과 북측 대표단장인 최성익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7개항의 합의서에 서명 교환한 뒤 악수를 하고 있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북한이 23일 제7차 남북적십자회담에서 6·25전쟁 후 납북자의 존재를 처음으로 공식 인정하고 납북자와 국군포로의 생사 확인 문제를 남측과 협의하기로 합의했다.

남북은 회담 사흘째인 이날 ‘이산가족 문제에 전쟁 시기 및 그 이후 시기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사람들에 대한 생사 확인 문제를 포함시켜 협의 해결해 나가기로 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합의서를 채택하고 회담을 마쳤다.

이는 남측이 요구한 ‘납북자와 국군포로’라는 용어 대신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사람들’이란 표현을 쓰긴 했지만 전쟁 후 납북자의 존재를 북측이 처음 공식 인정한 합의다.

또 남북 간 공식 회담에서 북측이 전쟁 후 납북자의 생사 확인 문제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도 처음이다.

북측은 지금까지 전쟁 중 북에 억류된 납북자와 국군포로가 있다는 사실은 인정했지만 전쟁이 끝난 뒤 강제 억류된 남측 사람은 없다는 공식 입장을 고수해 왔다.

남측은 납북자 480여 명과 국군포로 500여 명에 대한 생사 확인을 일시에 할 것을 요구했으나 북측은 현행대로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할 때마다 비공식으로 일정 규모의 생사 확인을 하자는 뜻을 굽히지 않고 관철했다.

또 남측은 이산가족 1만 명에 대한 생사 및 주소를 확인할 것을 제안했지만 북측의 반대로 ‘생사 및 주소 확인 작업을 지속적으로 폭넓게 실시하기 위한 문제를 계속 협의한다’고 합의했다.

남북은 이 밖에 △6·15남북공동선언을 기념해 남북 각 200명씩 이산가족 대면상봉 △6·15와 8·15광복절을 기념해 남북 각 60명 씩 화상상봉 △화상상봉센터 준비와 이산가족 사업 확대를 위해 남측이 북측에 설비 자재 제공 △6월경 금강산에서 제8차 적십자회담 개최에 합의했다.

한편 6·25전쟁 후 납북자에 대한 생사 확인 문제를 이산가족 문제에 포함시켜 협의하고 해결해 나가기로 합의한 데 대해 납북자 가족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납북자가족모임 최성용 대표는 “전쟁 후 납북자 일부를 특수 이산가족으로 분류해 생사를 확인하고 일부가 상봉한 것은 몇 해 전부터 북한의 묵인하에 이뤄진 일”이라며 “그것을 단지 문서상으로 표현한 것을 진전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납북자가족협의회 최우영 회장은 “그동안 전쟁 후 납북자를 인정하지 않은 북한이 이를 인정한 것은 분명한 진전”이라고 했다.

금강산=공동취재단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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