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정부 국정원도청]팀원 32명이 3교대로 24시간 도청

  • 입력 2005년 10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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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 불법 감청(도청)은 전천후로 이뤄졌다.”

김대중(金大中) 시절 국정원이 고성능 감청장비를 활용해 24시간 주요 인사를 도청한 사실이 김은성(金銀星·구속기소) 전 국정원 2차장의 공소장을 통해 공개됐다.

감청장비의 개발에서부터 운용, 도청 정보의 일일보고에 이르기까지 국정원은 도청을 치밀하게 계획하고 실행한 사실이 드러났다.

▽첨단 장비 활용=국정원의 도청이 전과 구별되는 것은 ‘유선중계통신망을 이용한 감청장비(R-2)’와 ‘이동식 휴대전화 감청장비(카스·CAS)’ 등 첨단 감청장비를 활용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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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은 1999년 9월 R-2 6세트를 개발해 본격 운용했다. R-2는 통신회사의 유선중계통신망 회선에 감청장비를 연결해 그 회선을 통과하는 모든 통화 내용을 감청할 수 있는 장비. 도청 업무는 국정원 8국(과학보안국) 운영단 소속 국내수집과의 ‘R-2수집팀’이 맡았다.

R-2는 6세트를 이용해 최대 3600회선까지 감청이 가능했다. “6세트로 120회선만 감청이 가능했다”는 국정원의 당초 발표와 달리 장비의 성능이 상당히 뛰어났던 것이다.

김영삼(金泳三) 정부 시절 국가안전기획부가 도청기를 설치해 특정 인사의 대화를 엿듣는 ‘수공업 방식’을 활용했다면 국정원은 첨단 장비를 개발해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극복했다.

▽무차별적 도청=2개 팀이 운영된 국정원 R-2수집팀의 경우 팀원 32명이 3교대로 24시간 도청 업무를 수행했다. 여야 정치인과 경제인, 고위 공직자 등 고위층 인사의 휴대전화 번호를 R-2에 미리 입력한 뒤 통화 내용을 도청했다.

실무 직원은 매일 대화체 형식으로 요약한 중요 통화 내용 7, 8건을 ‘8국’ ‘친전(親展)’ 표시가 된 봉투에 밀봉해 8국장 결재를 거쳐 김 전 차장에게 전달했다. 산술적으로 주요 인사의 도청 내용이 1년이면 3000건, 3년이면 1만 건에 이른다는 계산이 나온다.

R-2를 통해 수집됐으나 보고되지 않은 도청 내용까지 합한다면 수만 건에 달하는 도청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다 카스를 활용한 도청 사례를 더한다면 도청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카스는 1999년 12월 총 20세트가 제작돼 국정원 11개 지부에 1세트씩 배치됐다.

▽여자관계도 파악=새로 공개된 도청 사례 5건에는 2000, 2001년 김홍걸(金弘傑) 씨의 측근이었던 최규선(崔圭善) 미래도시환경 대표와 민주당과 자민련 등 당시 여당 정치인의 동향이 주로 포함돼 있다.

국정원은 최 씨가 2000년 10월∼2001년 11월 사무실 운영 및 여자관계와 관련해 통화한 내용을 도청했다. 최 씨가 2001년 4월 국정원장 등 고위 공직자 인사에 관여한 내용도 도청됐다.

국정원이 도청한 대상에는 2001년 4월 김윤환(金潤煥·작고) 당시 민국당 대표와 민주당 의원이 ‘민주당, 자민련, 민국당 간의 정책연합’과 관련해 통화한 내용이 포함됐다.

또 2001년 9월 당시 이완구(李完九) 자민련 의원이 자민련 관계자와 ‘임동원(林東源) 통일부 장관 해임안에 대한 자민련 입장’에 대해 나눈 통화 내용도 체크됐다.

2001년 여름에는 전 북한 노동당 비서 황장엽(黃長燁) 씨의 미국 방문과 관련해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통화하는 내용을 국정원이 도청했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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