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홍관희]지금 ‘對北 퍼주기’가 급한가

  • 입력 2005년 9월 26일 03시 06분


북한 핵 6자회담 공동성명 일주일.

지금 우리 사회는 ‘북핵 위기 해소’라는 초기 환상에서 점차 깨어나는 분위기다. 성명 내용을 정밀 분석한 결과 현실적 의미와 일부 함정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6자 합의는 북한의 모든 핵무기와 프로그램의 완전 포기를 규정했지만, 북한의 ‘평화적 핵 권리’와 ‘경수로 논의’를 함께 약속함으로써, 북한이 억지 주장을 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했다. 이는 바로 다음 날 나온 북한 외무성 담화에서 여실히 나타났다.

북한은 6자 합의에 명시된 ‘선(先) 핵 포기’를 정면으로 거부하고, 이른바 ‘행동 대 행동’의 논거하에 ‘핵 포기’ 이전에 경수로 제공을 요구했다.

이제 북한이 핵을 쉽게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분명해졌다. 미국의 정책결정자 가운데 외교와 협상으로 북핵을 포기시킬 수 있으리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두 번에 걸친 허리케인 내습으로 외교 현안에 집중할 여력이 부족한 상태다.

북한은 이 틈에 ‘미국이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적반하장식 억지 주장으로 핵 교착의 책임을 미국에 전가하고 있다. 결국 6자 합의는 ‘선 북핵 포기’라는 북핵 해결의 기본 목표를 흩뜨리고, 북한이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11월 초로 예정된 제5차 6자회담에서도 지금까지와 같은 동일한 논리의 상호 공방과 대립이 반복될 전망이다. 그 와중에서 북한은 핵무장을 향한 업그레이드를 계속할 것이다. 북한의 시간 벌기 전략이 주효하게 적중하고 있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한국 정부의 방침과 역할은 무엇인가? 북핵 문제가 사실상의 후퇴와 악화일로를 보이는 상황에서 정부는 6자 합의를 ‘대타결’로 간주해 축제 분위기 속에서 ‘대북 퍼 주기’ 수순에 돌입하려 하고 있다. 전력 제공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이고, 경수로 제공 문제도 현실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자신이 6자 합의 직후 ‘북한 경제를 돕기 위한 포괄적 지원’을 언급한 데 이어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도 일어나고 있다.

지난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는 6자 합의 이후 대북 송전 및 경수로 비용 문제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안타깝게도 정부는 대북 지원의 문제점, 비용 규모, 영향 등에 대한 정밀 분석 없이, 오로지 대북 지원의 정당성만을 홍보하는 모습이다.

정부는 대북 지원을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필요한 비용’이라 주장하고, 차제에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북핵 문제가 원점에서 맴돌 가능성이 있는 현실에서, 10조∼20조 원에 이르는 대규모 대북 지원은 난센스다. 국익 차원에서도 위험한 것으로 여겨진다.

무엇보다도 전력은 북한의 군사 활동을 활성화할 수 있는 중요한 전략물자임을 상기해야 한다. 또 경수로 제공 문제는 6자 합의에 명시된 것처럼, ‘핵 포기’ 이후에나 고려될 문제이지 지금은 결코 논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아울러 노 정권의 북한 경제 살리기는 북한의 대남전략이 불변인 상황에서, 평화 촉진은커녕 북한 체제를 강화해 한국의 국가안보를 치명적으로 위협할 수 있는 불씨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정부의 무분별한 대북 지원 정책에 힘입어 민간 차원에서도 절제 없는 방북 러시가 이루어지고 있다. 북한의 집단체조극 ‘아리랑’ 관람을 위해 9000여 명의 민간인이 100여만 원의 비용을 들여 평양 방문에 나설 움직임이라 하니, 비용도 비용이려니와 북한의 위장평화 공세에 대처하지 않는 지금의 유화정책이 과연 정상적인 것인가 의문이다.

홍관희 안보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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