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만 된다면 6자회담이 드디어 본질적인 문제에 접근하기 시작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6자회담의 목적 자체가 북한의 핵문제 해결이기 때문이다.
핵 폐기라는 표현이 합의문 형태로 공식 발표되면 앞으로 6자회담에서는 핵 폐기의 범위와 절차, 검증 방법, 상응하는 보상 조치 등에 대한 협상에 가속도가 붙을 수 있다.
1∼3차 6자회담 때는 북-미 간의 입장차가 워낙 커 회담 결과물에 ‘핵 폐기’란 단어를 단 한 번도 넣지 못했다. 지난해 6월 3차 회담의 의장 성명에선 ‘비핵화를 위한 초기조치’라는 모호한 표현만 담았을 뿐이다.
한국대표단 관계자는 “이번에 다루는 보따리는 매우 무게가 나가는 것”이라는 말로 이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다.
핵 폐기가 명시되면 상응하는 조치로 북-미 관계 정상화와 안전보장, 경제협력 등의 보상 방안도 어떤 식으로든 합의문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이 두 가지는 한반도 비핵화란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두 기둥’이라는 점을 한국대표단은 누누이 강조해 왔다.
경제협력 문제가 합의문에 언급된다면 역시 진전이라고 볼 수 있다. 과거엔 경제지원에 대해 말만 무성했지 합의문에는 어느 것 하나 들어간 게 없다.
이번에는 북한에 전력 200만 kW를 공급하는 ‘중대 제안’이 포함되는 등 보상 방안이 몇 가지 나열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앞으로 ‘폐기와 보상’의 단계적 이행을 구체적으로 논의하는 데 밑거름이 될 수 있다.
핵 폐기 및 보상의 원칙과 관련해선 3차 회담 때 등장한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 원칙이 이번에도 유지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송민순(宋旻淳) 외교통상부 차관보가 밝힌 ‘동시성의 원칙’이 언급될 수 있다면 회담은 몇 걸음 나아가는 셈이 된다. 북한이 가장 불안해하는 ‘선(先) 핵 폐기’ 문제가 정리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쟁점인 한반도 비핵화의 대상과 관련해 한국과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와 ‘모든 핵 프로그램’을 의미하는 문구를 합의문에 담고 싶어 하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특히 북한은 중단된 경수로 건설의 재개를 요구하면서 평화적 핵 이용 권리를 계속 주장하고 있다.
비핵화의 개념과 관련해선 과거 회담 결과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만 계속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북한이 한국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 제공을 새삼 문제 삼은 것은 한미동맹의 근본을 흔드는 사안이지만 합의문에선 빠질 것으로 알려져 한국대표단이 안도하게 됐다.
회담 방향을 결정적으로 되돌릴 수 있는 악재로 꼽혔던,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인정하는 핵군축회담 주장 역시 회담장에선 쏙 들어갔다.
베이징=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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