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진 사람에 자리 報恩…인사시스템 있으나 마나

  • 입력 2005년 6월 24일 03시 10분


청와대나 여당에 몸담았던 정치권 인사들이 정부 산하 공기업이나 유관단체의 기관장, 감사 등 핵심 요직에 잇달아 선임되고 있다.

현 정부 출범 후 논란이 됐던 ‘코드 인사’에 여당 출신 총선 낙선자에 대한 ‘보은(報恩) 인사’까지 겹치면서 공기업 인사의 난맥상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전문가들은 공기업 임원 인사를 ‘정치적 논공행상’용으로 만들면 경영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결국 국민의 세금 낭비로 이어진다고 강조한다.

○ 전문성보다 조직 장악력(?)

청와대가 22일 이철(李哲) 전 의원과 이해성(李海成) 전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을 각각 한국철도공사 사장과 한국조폐공사 사장에 내정한 것은 전문성을 무시한 전형적인 ‘여당 낙선자 챙기기’라는 평이다.

지난해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부산에서 출마했다가 떨어진 두 사람은 해당 공기업 업무와 관련된 일을 해본 적이 거의 없다.

또 4월에는 이우재(李佑宰) 전 열린우리당 상임고문이 한국마사회장에 선임됐다.

한행수(韓行秀) 대한주택공사 사장, 공민배(孔民培) 대한지적공사 사장, 이영탁(李永鐸) 한국증권선물거래소 이사장, 허진호(許眞豪)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 윤덕홍(尹德弘)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은 총선 보은 인사로 꼽힌다.

지난해 열린우리당 후보로 총선에 출마했다 떨어진 사람 가운데 지금까지 8명이 공기업이나 주요 기관의 책임자로 임명됐다.

청와대 측은 철도공사와 조폐공사 사장 선임에 대해 “전문성보다 조직 장악력과 노조와의 협상력 등 통합 능력을 고려한 인사”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경희대 안재욱(安在旭·경제학) 교수는 “전문성을 지나치게 무시하는 낙하산 인사는 공기업의 경영효율을 크게 떨어뜨린다”며 “낙하산 인사가 없어지지 않는 것은 권력 극대화를 위해 측근을 요직에 보내려고 하는 권력자의 의지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 사모(私募)로 전락한 공모(公募)

시중은행 고위 임원을 지낸 최모(68) 씨는 지난해부터 공기업 사장 공모 때마다 하마평에 올랐다.

최 씨는 “공모에 앞서 사장추천위원회에서 이력서를 제출해 보라는 전화가 자주 오지만 실제 뚜껑을 열고 보면 내가 선출될 가능성은 애초부터 없었던 것 같다”며 “이제 들러리는 그만 서겠다”고 털어놓았다. 정부가 미리 사장이 될 사람을 정해 놓은 채 구색을 맞추기 위해 추천위원회를 열고 공모를 한다는 것.

최근 한국마사회장 공모에 나섰다가 고배를 마신 한 인사는 “선출 과정이 공정하지 못했다”며 농림부 측에 이의를 제기했다.

증권선물거래소 이사장 선임 때는 후보추천위원회의 한 위원이 “정부 측에서 청탁이 왔다”고 말해 파문이 일기도 했다.

대한광업진흥공사는 박양수(朴洋洙) 사장이 열린우리당 사무처장 출신인 데다 양민호(梁珉滸) 감사도 대통령비서관을 지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요즘 공기업 임원 선임 행태에 대해 ‘낙하산 인사’를 넘어 ‘공수부대 인사’라는 씁쓸한 농담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 시스템보다 의식이 더 문제

전문가들은 공기업 인사시스템보다는 최종 인사권자의 의식에 더 문제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비상임이사와 민간위원으로 구성된 사장추천위원회가 공모를 통해 적격자를 추천하고 주무 부처 장관이 제청하는 과정은 미국 영국 등 이른바 ‘인사 선진국’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실제 운용 과정에서는 전혀 딴판이 된다는 것.

단국대 오열근(吳烈根·행정학) 교수는 “최종 인사결정권자가 신세를 진 사람에게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아무리 좋은 인사시스템이라도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고 말했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정치권 인사의 공기업 및 기관 임원 선임 현황
이름현직현직
선임시기
전직 또는 주요 이력
이철철도공사 사장2005.617대 총선 출마(부산 북-강서갑·열린우리당)
이해성조폐공사 사장2005.617대 총선 출마(부산 중-동·열린우리당) MBC기자
이우재마사회장2005.4열린우리당 상임고문
이영탁증권선물거래소 이사장2005.117대 총선 출마(경북 영주·열린우리당)
한행수대한주택공사 사장2004.1117대 총선 출마(비례대표·열린우리당)
윤덕홍한국학중앙연구원장2004.1117대 총선 출마(대구 수성을·열린우리당)
정해주항공우주산업 사장2004.1017대 총선 출마(경남 통영-고성·열린우리당)
허진호법률구조공단 이사장2004.1017대 총선 출마(부산 수영·열린우리당)
박양수광업진흥공사 사장2004.9열린우리당 사무처장
박재호국민체육진흥공단 감사2004.9대통령정무2비서관
조상훈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감사2004.9노무현 국회의원 비서관(1988∼92)
강재홍교통개발연구원장2004.9노무현 대통령후보 교통특위 부위원장
공민배지적공사 사장2004.817대 총선 출마(경남 창원갑·열린우리당)
홍성일환경자원공사 감사2004.7대통령행정관
양민호광업진흥공사 감사2004.7대통령민원제안비서관
이치범환경자원공사 사장2004.7노무현 대통령후보 시민사회특보
송인회전기안전공사 사장2004.6열린우리당 정책위 부의장
김기영88관광개발공사 사장2004.4열린우리당 정무위 부위원장
강기룡중부발전 감사2004.4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 자문위원
최갑진서부발전 감사2003.12대통령 경호실 감사관
유준규해외건설협회장2003.8노무현 대통령후보 정책특보
이주헌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2003.4대통령직인수위원회 자문위원
현 정부 출범 후 선임된 인사들임. 기관장 및 감사 외에도 정치권 낙하산 인사는 더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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