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주성하]제프리朴목사와 길잃은 탈북자

  • 입력 2005년 3월 4일 18시 28분


모두가 새해 분위기에 빠져 있던 1월 2일 오후 1시경 멀리 동남아 메콩 강 기슭에서는 60대 노인과 6명의 탈북자가 둘러앉아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하나님, 천국에 가게 해 주세요. 아내에게 미안하고…. 제 아들이 계속 선교활동을 하게 해 주세요.” 노인은 나직한 목소리로 기도했다.

기도 후의 식사 때에도 노인은 이것이 ‘최후의 만찬’이라고 몇 번이고 되뇌었다. 노인은 무엇인가 예감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기도와 식사를 마친 일행은 소용돌이치는 메콩 강을 헤엄쳐 건너기 시작했다. 목숨을 건 사투였다.

탈북자 6명은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노인은 마지막 유품이 담긴 배낭을 강물 위에 남긴 채 물 속으로 영영 모습을 감추었다.

이것이 탈북자들을 위해 중국에서 10년 이상 사재를 털어가며 헌신해 온 한국계 미국인 제프리 박(박준재·63) 목사의 최후였다.

형용할 수 없는 간난신고 끝에 탈북자 6명은 한국으로 입국하는 데 성공했고, 이들의 입을 통해 박 목사의 마지막 순간이 전해질 수 있었다.

탈북자들이 박 목사의 최후를 전하는 그 순간에도 중국과 몽골, 동남아 여러 국경에서는 같은 장면들이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국내에 들어오는 탈북자들의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올 1월 한국에 입국한 탈북자는 78명. 지난해 같은 시기 158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다. 더구나 1월 입국자들 중에는 이미 몇 달 전 해외 공관에 들어가 입국 순서를 기다리던 탈북자들도 많이 포함돼 있어 입국자 수는 앞으로 더욱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탈북자들의 해외공관 진입 보도도 더 이상 없다. 여러 가지 배경과 이유가 있을 것이다. 탈북자들을 점점 외면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정부의 정책도 그중 하나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올해 초 “탈북자 문제를 가지고 북한 체제를 흔들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발표된 탈북 브로커 단속과 정착금 축소방침도 크게 보면 같은 맥락이다. 정부가 외면하는 한 ‘제2의 박 목사’는 또 나올 수밖에 없다.

주성하 국제부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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