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부시가 개성공단 방문?… 들어본 적도 없다”

  • 입력 2005년 1월 5일 17시 53분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4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개성공단에 함께 가자는 내 얘기를 받아들였다”며 칠레 산티아고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의 대화 내용을 공개하자 미 백악관 측은 즉각 이를 부인했다.

스콧 매클렐런 백악관 대변인은 노 대통령의 발언 직후 “그런 말은 들어본 적도 없다”고 반박했다. 매우 이례적인 반응이다. AFP 통신은 “백악관의 반응은 노 대통령의 발언을 전하는 보도들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청와대는 5일 “덕담 수준이었다”며 거듭 진화에 나섰지만 워싱턴에 던진 파장은 그리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

워싱턴의 한 외교전문가는 “두 정상이 공식회담도 아니고 걸어가는 상황에서 나눈 이야기가 노 대통령의 입을 통해 공개됨으로써 부시 대통령이 난처해졌을 것”이라며 “국익 차원에서 이롭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물론 노 대통령은 당시 “내년 부산에서 열리는 APEC 회의 때 한국에 오기로 돼 있는데, 한국에 오시면 개성공단에 한번 가자”는 정도로 가볍게 얘기했다고 공개했다.

실제로 노 대통령은 칠레에서 귀국한 뒤 참모들에게 문제의 대화 내용을 설명했지만 특별히 ‘정상간 합의’라고 생각했다는 흔적은 없다.

하지만 워싱턴 외교가나 백악관이 받아들이는 ‘대화 공개’의 의미는 다르다.

북한 핵 문제에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부시 대통령이 산업단지 시찰 명목으로 북한을 방문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소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노 대통령의 발언에 따르면 부시 대통령이 마치 그런 ‘비현실적 상황’을 쉽게 받아들인 것처럼 묘사돼 있다.

백악관이나 미 행정부는 노 대통령의 이번 발언이 “북한의 핵무기가 방어용이라는 주장에 일리가 있다”는 11월 로스앤젤레스 연설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정부의 고위 당국자도 “앞으로 외국 정상들이 이번 일을 이유로 ‘공식 합의된 대화 이외에는 한국과 대화를 하기가 꺼려진다’는 반응을 보이면 일선 외교관들은 난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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