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영국 국빈방문 의의는

  • 입력 2004년 12월 2일 16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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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국빈방문(State Visit)은 대영제국의 오랜 전통에 따라 장엄하고 화려한 의전행사로 유명하다. 이번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국빈방문은 1883년 조선과 영국이 우호통상항해조약을 체결한 이후 120년만에 처음 있는 일. 영국 왕실은 국빈방문을 1년에 두 차례로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어 앞으로 수십년 간은 한국 대통령이 국빈방문 기회를 잡기 어려울 것이라고 한다.

이런 영국 국빈방문은 △버킹엄 궁 인근의 '호스 가즈(Horse Guards)'에서 열리는 공식환영식 △영국 국왕과 함께 왕실 마차를 타고 버킹엄궁으로 행진하는 것 △버킹엄 궁 안에서 묵는 것 △영국 국왕과의 개인 오찬 및 국빈 만찬 등이 필수요소로 꼽힌다.

미국 대통령의 경우 이러한 영국 국빈방문의 필수조건 때문에 국빈방문 여부를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아왔다. 미국 측은 1918년 우드로 윌슨 전 대통령, 1982년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방문을 국빈방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영국 왕실은 국빈 방문의 형식을 다 갖추지 못했다는 점을 들어 2003년 11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방문을 미국 대통령 최초의 국빈방문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전의 미국 대통령에게는 정궁(正宮)인 버킹엄궁 대신 별궁인 윈저성을 숙소로 제공했기 때문.

그러나 최초의 국빈 방문을 한 부시 대통령은 거꾸로 자신이 왕실의 의전을 여지없이 깨뜨렸다. 부시 대통령은 경호상의 이유를 들어 전용헬기를 타고 버킹엄궁의 정원에 착륙했고, 헬기가 일으킨 바람 탓에 많은 관목이 꺾였다. 당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단단히 화가 났던 것으로 알려졌고, 영국 언론들은 "부시 대통령이 여왕을 울렸다"고 비난했다.

2003년 6월 국빈방문을 했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가장 전형적인 국빈방문 의전을 치른 사례로 꼽힌다.

1874년 알렉산드르 2세 황제 이후 최초로 국빈 방문을 한 푸틴 대통령은 히스로 공항 도착 때 찰스 왕세자의 영접을 받았고, 왕실 기마대의 호위를 받아 호스 가즈까지 이동하는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통상 국빈방문시 공항 영접은 왕실 의전서열 3위인 찰스 왕세자가 하고 있으나, 노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밤 11시(현지시간)가 다 돼 히스로 공항에 도착한 탓에 그같은 영접은 없었다. 늦은 밤에 도착한 일정 때문에 영국 왕실은 "노 대통령의 국빈방문 기간은 1일부터"라고 밝히고 있다.

호스가즈에서의 왕실 근위대 사열 때에는 근위대장이 방문국의 언어로 사열 구령을 내린다. 사열 안내는 보통 찰스 왕세자가 하지만, 이번에는 의전서열 2위인 에든버러공이 맡았다. 찰스 왕세자는 1일 저녁 국빈 만찬 때 처음 모습을 나타냈다.

마차 행진은 가장 이색적인 대목이다. 여왕이 타는 1호 마차에는 상대국 국가원수가 나란히 앉고, 맞은 편에 통역관 1명만이 동승한다. 이번에 노 대통령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탄 1호 마차에는 노 대통령의 통역을 맡고 있는 이성환(李誠煥·28) 외무관이 함께 탔다. 이 외무관은 이태식(李泰植) 주 영국 대사의 둘째아들로, "이번 국빈방문에 부자(父子)가 활약했다"고 해서 화제가 되고 있다.

노 대통령은 2일 저녁 국빈 방문 행사의 일환으로 런던 길드홀에서 세이버리 런던시장 주최로 열린 만찬에 참석했다. 이 만찬에는 영국의 정,관, 재계 인사 600여명이 초청됐다. 한편 노 대통령은 1일 저녁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 취화선, 박하사탕, 초록물고기, 오아시스 등 4편의 한국영화를 담은 DVD를 선물했다.

런던=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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