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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11월 26일 18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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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취리히에서 발행되는 독일어판 시사주간지 ‘팩츠’의 하랄트 마스 기자가 최근 북한 당국의 초청으로 다른 유럽 기자들과 함께 나선(나진 선봉) 경제특구를 방문했다.
그가 ‘배고픈 나라에서의 행락(行樂)’이라는 제목으로 18일 ‘팩츠’에 게재한 르포를 요약해 소개한다.
“오늘밤엔 북한 여자를 한번 봐야지.”
30대 후반의 상하이 출신 중국인 남자가 이렇게 말한 것은 우리를 태운 중국 관광버스가 두만강 하류 국경 다리를 막 통과할 때였다. 그의 눈은 기대(?)로 가득 찬 듯했다.
버스에는 유럽 기자와 중국인이 섞여 있었다. 버스는 옌지(延吉)를 출발해 북한으로 들어온 뒤 2시간반 동안이나 험한 길을 달렸다.
차창 밖으로 깡마른 농부들과 반쯤은 무너진 판잣집들이 스쳤다. 드디어 목적지인 나선 특구의 ‘황제 호텔(Emperor Hotel)’에 도착했다.
호텔 직원들이 허리를 굽혔다. “후안잉(환영합니다)”이라는 말이 로비 여기저기서 들렸다. 우리 일행의 가이드를 맡은 박모씨(여)는 “올해 나선 특구를 찾은 유럽인은 처음”이라며 반가워했다.
중국 관광객들은 바로 카지노로 직행했다. 중국에서는 도박이 금지돼 있어 매년 수만명의 중국인이 나선 특구를 찾아온다.
홍콩의 엠퍼러 그룹이 4년 전 세운 이 호텔은 아주 특별한 곳이다. 이곳에선 매일 밤 자본주의가 키운 ‘환락의 세계’가 펼쳐진다. 150개 객실 규모로 중국 위안과 미국 달러만 통용된다.
레스토랑의 젊은 북한인 직원들은 검정색 야구모자를 쓰고 있었다. 20대 초반의 한 직원은 “영어도, 컴퓨터도 배우고 싶다”고 바깥세상에 대한 동경을 나타냈다.
북한에서 포르노 채널을 볼 수 있는 곳은 이 호텔이 유일하다고 박씨는 여러 차례 강조했다.
‘섹스’도 중국인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데 큰 몫을 한다. 호텔 사우나에는 ‘당신을 화끈하게 만족시켜 드리겠습니다’라는 광고문이 여기저기 붙어 있다. 가라오케에는 짙게 화장을 한 젊은 북한 여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남자들에게 웃음을 흘렸다.
카지노는 24시간 영업. 오후가 되자 절반가량의 테이블을 중국인들이 차지했다. 선양(瀋陽)에서 왔다는 중국인 왕씨는 도박과 섹스를 위해 왔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이틀 숙박비용은 식사를 포함해 750위안(약 11만원)가량.
나선 특구는 1991년 북한이 중국을 본떠 만들었지만 2000년까지 겨우 3500만달러의 외자가 들어왔을 정도로 투자와 개발이 지지부진한 상태다. 이 호텔을 지은 엠퍼러 그룹 정도가 거액을 투자한 정도.
저녁 무렵, 가이드 박씨가 동승해 버스를 타고 시내 투어를 했다. 건물은 대부분 불이 꺼져 있고 거리에는 차량이 거의 없어 썰렁했다. 시장에선 허리 굽은 할머니들이 중국에서 가져온 건전지와 비누, 자잘한 가정용품을 팔고 있었다.
김동원기자 davi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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