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韓美, 수평관계 이룰 준비 돼 있나

  • 입력 2004년 9월 25일 17시 05분


24일 열린 한 조찬강연회에서 크리스토퍼 힐 주한 미국대사가 했다는 말이 의미심장하다. “미국은 한미 두 나라의 관계를 수평적으로 유지할 준비가 돼 있는데, 한국은 그럴 준비가 돼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는 발언이 그것이다.

힐 대사는 같은 자리에서 “미국이 ‘빅 브러더’로 불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했으니 이 발언을 단순하게 ‘수평적 한미관계를 기대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전 같지 않은 한미관계를 감안할 때 힐 대사의 말에는 곱씹어 봐야 할 복합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본다.

우선 따져 볼 것은, 지금 한미관계가 과연 노무현 대통령이 밝힌 대로 ‘할 말 좀 하는 사이’의 건강한 상태에 있느냐는 점이다. 한국사회에 높아진 반미(反美) 목소리와 주한미군 감축 등 돌아가는 사정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게 여론의 대세다. “1980년대에 미국은 한국 정부만 상대하면 됐지만 이제는 시민단체 연구기관 국회의원 등 수많은 의견을 듣고 의사결정을 한다”고 한 힐 대사의 말도 이처럼 ‘달라진 한국’에 대한 미국의 고민을 토로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이 진정 한국에 하고 싶은 말은 최근 힐 대사의 다른 발언들을 살펴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한국 내 반미 감정과 미국 내 반한(反韓) 감정이 한미간 전략적 동맹관계를 위협하고 있다” “한쪽이 의지가 없으면 굳건한 한미관계를 유지하기 힘들다” 등의 말은 오늘의 한미관계 실상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니겠는가.

따라서 “한국은 수평적 관계를 할 준비가 돼 있는가”라는 힐 대사의 질문은 이렇게 바꿔 들어야 할 것이다. ‘한국의 국가전략에서 미국은 어떤 존재이며, 한국사회의 혼란스러운 대미(對美) 인식은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한국이 답변할 시간은 많이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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