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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9월 16일 19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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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종 울릴지 사기만 떨어뜨릴지▼
최근 100만원을 수수한 행시 출신 차관이 사표를 제출했다. 명예를 제일로 생각해야 할 공직자가 불명예스럽게 20여년의 공직생활을 일순간에 마감하는 모습을 보니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물론 금품을 수수한 행위 자체를 옹호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법의 적용에서도 절도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분명하다. 법에도 감정이 있으며, 그러하기에 위반 내용이나 정황 등을 고려해, 그리고 당사자의 사정 및 공익을 모두 반영해 신중한 법적용을 해야 한다는 요청이 법 일반원칙으로서의 비례성의 원칙이다. 돈 100만원의 가치가 얼마나 큰 것인지, 그리고 돈 100만원에 좌우되어 직무에 영향을 받을 20여년 경력의 공직자가 얼마나 될지는 다소 회의적이다. 그러하기에 이번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대로 공직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일이 될지, 아니면 오히려 명예를 생각하는 공직자의 사기만 저하시키는 일이 될지는 지켜보아야 할 일이다.
얼마 전 대기업 임원에게 전화를 걸어 행사비 분담을 요청하는 등 살아 있는 권력을 과시한 바 있는 대통령비서관도 공무원이기는 마찬가지다. 단지 행정고시와 같은 엄격한 자격심사를 거치지 않고 집권층과의 친소관계에 따라 임용됐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재계의 자발적 협조를 요청한 것일 뿐이라는 본인의 주장을 그대로 믿는다 하더라도 그럴 권한이 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부적절한 행위로 공직의 명예를 실추시킨 사람에 대해 왜 경종을 울릴 처벌이 불필요했는지 나는 그 이유를 잘 알지 못한다.
국회의원도 법적으로는 공무원이다. 그들도 국록을 받는 이상 당연히 공직자로서의 책임의식이 요구된다. 그러나 선거에 당선되는 데 급급한 정치인이기 이전에, 이들에게 공직의식이 얼마만큼 자리 잡고 있는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국회의원도 스스로 엄격한 법적용을 받아야 하는 공직자라는 사실만 제대로 인식해도 많은 비리나 부정행위가 없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다.
기업인에게서 돈을 받은 정치인들의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 돈의 성격을 둘러싸고 논란이 있지만 그것을 정치자금으로 보아 ‘운 좋게’ 공소시효가 만료된 것으로 간주한다고 해도 그들의 행위가 면책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억대의 돈을 받은 공직자는 면책되고 100만원을 받은 공직자는 엄중 문책되는 기이한 현상은 가치관의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사법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면 정치적인 차원에서라도 단죄해야 한다. 다음 선거에서 낙선운동을 하려는 시민단체가 있다면 이런 사실을 미리 잘 기록해 반드시 정치적 단죄가 이뤄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법적용에 형평성 유지해야▼
법적용은 그 대상이 누구이든 형평에 맞게 유지되어야 한다. 형평을 유지하지 못한 법적용은 허위일 뿐이다. 최근 일련의 사건들은 우리 사회가 법적용에서 얼마나 균형을 이루고 있느냐는 문제에 대해 진지한 반성을 요청하고 있다. 오늘 스산한 이 가을 아침에, 얼마나 많은 바람이 불어야 우리가 알고 있는 허위의 길들이 잊혀질 것인가를 고민했던 김광석, 그의 노래가 그리워진다.
류지태 고려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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