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맵 공화국]‘머리’따로 ‘손발’따로

  • 입력 2004년 8월 22일 18시 40분


“위원회에서 시키는 대로 할 뿐인데 신바람이 날 리가 있습니까?”

정부 부처의 한 간부는 “대통령직속 위원회가 중장기 정책 수립의 ‘컨트롤 타워’가 되면서 우리는 ‘말단 소총수’로 전락한 것 같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종전 정책수립뿐 아니라 실무집행까지 도맡았던 부처 공무원들이 새 정부 들어 중장기적인 정책수립 과정에서 밀려나면서 이들의 소외감이 깊어지고 있다.

경제부처의 한 국장급 간부는 “정책결정 과정을 보면 로드맵을 짜는 대통령직속 위원회가 상층부 역할을 맡고 그 밑에 일선 부처가 편입돼 있다”면서 “주문하는 대로 일해야 될 처지에 놓인 부처 공무원들로선 여간 맥 빠지는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사회부처의 실무 관계자는 “대통령직속 위원회가 앞장서면서 정책에 힘이 실리는 순기능도 있지만 위원회별로 장기과제에 경쟁적으로 매달려 정작 여기에 들어갈 예산을 어떻게 감당할지 궁리도 못하고 있다”고 털어 놓았다.

특히 대통령자문 역할을 하는 위원회가 주요 정책 의사결정권을 갖게 되면서 보수적 성향의 부처 공무원들 사이에선 “이념적으로 동의하기 어려운 정책들이 위에서 내려올 땐 대국민 설득 문제부터 고민하게 된다”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사정당국의 한 관계자는 “위원회가 부처를 관할 통치하는 형태가 되면서 정책결정 과정에서 소외된 관료들의 무기력 증세마저 나타나고 있다”면서 “로드맵을 만드는 곳과 정책을 집행하는 부처간의 간극을 좁히지 못한 탓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처럼 막강한 정책결정권을 행사하는 위원회에 대한 견제장치는 미흡한 실정이다. 여기에다 정책 결정과 집행이 분리돼 있다 보니 책임과 권한에 대한 경계선이 불분명한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대통령 직속의 12개 국정과제위원회 가운데 심의 의결권이 있는 기구는 신행정수도추진위원회 정도. 나머지 위원회는 대부분 자문기구로 돼 있다 보니 국회 국정감사 대상에도 이들 위원회는 빠져 있다. 감사원도 이들 조직에 대한 감사는 엄두도 못 내고 있다.

감사원 관계자는 “자문기구여서 공과를 가리기 위해선 상당 기간이 지난 뒤에나 가능하다”면서 “국가균형발전위원회처럼 예산권을 갖고 있는 위원회의 경우 감사를 할 수 있지만 이들의 자문과 정책에 대한 검증을 하기는 아직 이른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대중(金大中) 정부 시절 재정경제부 국장을 지낸 이종구(李鍾九·한나라당) 의원은 “국가비전의 청사진을 담아야 할 로드맵이 다양한 의견수렴 절차를 거치지 못하고 상의하달식으로 결정돼 정책순응도가 떨어질 뿐 아니라 행정비용 낭비 가능성도 높다”고 지적했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이태훈기자 jeffl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