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4년 8월 1일 19시 10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그러나 어머니 신재순씨는 이 잡지가 발간된 날인 지난달 12일 부산의 한 사찰에서 92세를 일기로 사망해 주위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북한은 조씨의 정확한 사망시점은 공개하지 않았다.
1일 공개된 ‘금수강산’에 따르면 조씨는 1950년부터 남쪽에 두고 온 어머니에게 편지를 썼다. 조씨는 서울대에 다니던 50년 6·25전쟁 직후(당시 18세) 의용군이 됐고, 전투에서 한쪽 팔을 잃은 뒤 홀로 월북, 김일성종합대를 졸업하고 모교 교수로 일했다.
조씨의 첫 편지로 추정되는 빛바랜 편지는 “서울의 그 셋방에서 기다리시겠다더니 지금 어디 계십니까”라며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담았다.
그는 또 대구 제3중학교에 이어 대학에 입학한 자신의 학비를 어머니가 품을 팔아 힘들게 마련한 일을 떠올리며 “온종일 지친 몸을 끌며 돌아왔어도 셋방에서 공부하는 아들을 방해할까봐 신발을 벗어보지 못한 채 또 일감을 찾아 떠나던 어머니였다”고 회고했다.
그가 김일성종합대 수학역학부(數學力學部) 학생 시절부터 어머니를 그리며 쓴 편지는 수십통.
“사랑하는 어머니, 기뻐하세요. 전 이번에 모스크바 국제수학자대회에서 새로운 공식을 발표했답니다. 학계가 법석 끓었어요.”(60년대 중반)
마지막 편지는 2000년 8월 이산가족 상봉 때 어머니를 극적으로 만나고 난 뒤 작성했다. “불쌍한 나의 어머니 … 가슴이 찢어져요 … . 아 어머니, 함께 살자고 떨어질 줄 모르던 어머니, 통일을 그토록 빌던 어머니의 모습이 사라지지 않아요.”
모자는 이승에서 그토록 염원하던 결합의 꿈을 결국 하늘나라에서 이루게 됐다.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