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日 관계전망]장애물 치우고 대화채널 일단 확보

  • 입력 2004년 5월 23일 18시 47분


일본 언론들은 이번 북-일 정상회담의 최대 성과로 수교회담 재개의 전기를 마련한 점을 꼽았다. 특히 쌀과 의약품 지원까지 이뤄지게 됨으로써 양측의 적대적 관계도 어느 정도 완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와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의 대화 내용을 봐도 그렇다.

▽김 위원장=2002년 9월(1차 북-일 정상회담) 이후 사태가 복잡해진 것에 대해 대단히 실망했다. 하지만 총리의 재방문을 환영하며 이번 회담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서로 현재의 비정상적 관계를 정상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대국적 얘기를 하려고 다시 왔다. 2002년의 평양선언을 준수하는 한 이른바 경제제재를 발동할 생각은 없다.

두 정상의 대화처럼 1차 정상회담 이후 급진전될 것처럼 보였던 수교회담은 바로 다음 달 납치문제에 대한 일본사회의 여론이 악화되면서 중단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번 회담에서 피랍자 북한 잔류 가족의 송환이 타결됨으로써 수교회담 재개의 돌파구는 마련된 셈이다. 당장 6월 말로 예상되는 3차 6자회담을 전후한 시기에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자연스럽게 실무접촉이 이뤄질 것으로 일본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다만 수교회담의 본격적 재개는 6자회담에서 북한의 핵무기 개발, 미사일 발사 실험 등에 대한 해법의 기본틀이 만들어진 뒤에 이뤄질 것으로 보는 시각이 유력하다. 북-일 관계는 기본적으로 북-미 관계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성급하게 북-일 수교회담의 진전을 점칠 수 없는 이유다. 북한의 핵 및 미사일에 대한 두 사람의 인식 차이는 여전했다.

▽고이즈미=핵 보유로 얻을 수 있는 것과 핵 폐기로 얻을 수 있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미국은 북한을 공격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김=우리도 핵을 가지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미국의 자세 때문에 핵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또 피랍자 자녀 5명의 송환에도 불구하고 납치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북한이 사망했다고 통보했거나 납치 사실 자체를 부인하는 일본인들에 대한 진상조사 문제가 협상에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김 위원장은 “해결이 끝났다고 하는데도 그렇게 말한다면 백지에서 재조사하자. 일본이 참가해도 좋다”고 했지만, 재조사 과정에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러나 북한으로서는 이번 회담에서 고이즈미 총리의 경제제재 조치 발동 보류 약속을 받아냄으로써 최소의 양보로 최대의 실리를 챙겼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도쿄=조헌주특파원 hans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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